올바른 우리의 선택은?
올바른 우리의 선택은?
요즘 들어 사회 부조리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어느 때 보다 높다. 최저시급 5580원도 아까워 열정 페이로 젊은 이를 부려먹는 이야기부터 ‘갑’질에 의한 여러 문제까지. 이제 사람들이 처지를 토로하는 것에서 벗어나 분노를 이야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고 어디서부터 올바로 고쳐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 체 현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들로 넘쳐난다. 모든 목소리는 정치권을 향한다. 입법, 사법, 행정기관 중에 입법과 행정을 담당하는 것이 정치권이다 보니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은 모두 정치권을 향하게 마련이다. 예로부터 삶이 팍팍 할수록 서민들의 술안주는 정치인 이었다. 특히 요즘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유달리 높아졌다. 그런데, 그 높이진 관심에 문제점이 발견된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이 침몰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떠나자니 가진 게 없다. 바가지로 손수 물을 퍼내야 하는데 그 방향이 묘하게 틀어져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단계 발전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이 필요한가?’ 정치인은 프레임을 좋아한다. 사나운 대상을 단번에 죽일 수 없다면 가두어 놓고 길 들여야 한다. 이 불변의 진리가 통용 되는 곳이 바로 정치다. 과거 시민 혹은 인민에 의한 기득권층의 붕괴를 거친 나라들도 그 이전 역사는 프레임을 통한 시민의 길들이기였다. 정치인에게 프레임은 생명이다. 틀을 잘 짜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경기장으로 불러들인다. 자신의 영역서 싸움을 벌이니 이길 확률은 월등히 높아진다. 이 승리 방정식은 과거나 현대의 어느 시대에도 통하는 정치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비단 서구 사회만 아니라 조선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프레임을 공유하는 정치인들은 집단을 형성한다. 바로 정당이다. 과거에는 ‘~파’라는 집단으로 분류 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프레임 속에 갇혀 살아 왔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역 갈등’구조다. 이 지역갈등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백제와 신라의 관계를 현재 경상도와 전라도로 대입시킨 방식이다. 즉. ‘원래 둘 사이는 물과 기름같이 섞일 수 없다’는 논리에 갇혀버린 시민들은 오랫동안 그 프레임 속에서 놀아났다. 백제와 신라만 아니라 고구려까지 서로와 다투기도 하고 서로와 화해하기도 한 국가간의 문제인데 이를 지역 갈등구조의 재료로 사용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얼마나 어이없는 프레임에 갇혀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다른 프레임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북한과 안보를 이용한 방식. 세대간의 갈등을 이용한 방식. 계층간의 갈등을 이용한 방식 등 정치인은 다양한 틀을 만들어 유권자를 그 안에 가두려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쉽게 그 틀 안에서 길들여졌다. 정치인은 프레임을 만들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내가 충분히 준비한 문제를 부각 시킨다. 상대가 문제에 대해 미처 준비하지 못하면 그것을 프레임화 시킨다. 정쟁의 쟁점으로 만들어 나를 부각 시키고 상대를 코너로 몰아 넣는다. 상대는 나의 프레임으로 끌려 들어오지 않기 위해 다른 문제를 이용한다. 정치는 하나의 전쟁과도 같다. 문제는 전쟁을 치르는 당사자가 유권자들을 올바로 이해 시키고 표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인은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 정치인은 유권자의 ‘분노’를 이용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노를 조절하지 못 한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공격한다. 모든 문제를 갈등으로 몰고 간다. 분노한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집단을 형성한다. 그 집단은 마치 광신도 같은 모양으로 변질된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우리가 남이 가’ ‘이 지역은 무조건 000 이다’ 라는 형태로 ‘당연시’화 된다. 코미디 같은 일이다. 정치인의 손에서 놀아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대 정치인을 보면 욕부터 한다. 정책은 들여다 볼 가치를 잃는다. 오로지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이야기에만 귀가 열려있다. 국가의 힘은 국민에게 나오기도 하지만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도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렇다면 간단한 예를 통해 정치인이 만드는 프레임의 무서움에 대해 짚어 보기로 하자. ‘정치인은 프레임을 만들고 우리는 그 안에서 길들여 졌다.’ 정치인 홍길동은 자신의 열혈 지지자를 이용하여 유권자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그가 심어둔 열혈 지지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에 몰래 심어둔 우익 지지자다. 이 사람의 역할은 홍길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분노를 끌어 내는데 있다. 그리고 그 분노의 화살은 상대 정치인이 아닌 상대 정치인을 지지하는 지지자로 향하게 만든다. 무서운 방법이다. 상대 후보가 아닌 상대 지지자를 향하는 것은 유권자끼리 싸움을 일으키겠다는 이야기다. 이 방식은 두 가지 효과를 부른다. 첫 번째 효과는 무 조건적인 표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은 공격을 받으면 당연히 본능적으로 방어를 한다. 즉. 상대 유권자로 하여금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공격 하는 게 아니라 나를 공격하도록 한다. 이는 나의 후보가 설령 정치적으로 잘 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관용을 베풀게 된다. 나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권자가 정치적 성향을 바꾸기는 무척 어렵다- 이런 현상은 결국 정치인의 올바른 정치 활동을 사라지게 만든다.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만 남게 된다. 상대 후보 보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더 뛰어난 역량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냥 무조건적 지지를 하게 된다. 대부분의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이런 양면성을 두고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가에 대한 토의나 이야기는 사라져 버린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몰두 하게 된다. 우리는 간혹 인터넷에서 [누구를 찍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나 [나는 누구를 선택하지 않았으니 마음껏 욕 해도 된다]는 형태의 글을 접한다. 전형적인 유권자끼리 싸움을 하는 프레임이다. 두 번째 효과는 정치가 쉬워진다. 굳이 머리를 싸매고 프레임을 만들 필요가 없다. 유권자 스스로 프레임에 갇혀 움직인다. 즉. 무조건적인 지지는 결국 그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버린다. 정치하기 편해지는 세상이 된다.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잘못된 정책을 시행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소나기만 피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유권자의 절반이 상대를 지지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나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만든 프레임은 무섭다.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경험했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나 자치단체를 운영하는 정책은 단기정책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장기 정책도 필수다. 오랜 시간 예산을 투입해 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 해야지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들은 당연히 시행 할 수 없다. 전임자가 만들어둔 정책을 후임자는 인정할 수 없다. 유권자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유권자가 인정하지 않도록 그들은 프레임을 만든다. 유권자는 그 안에 갇혀 정책을 정책으로 들여다 보지 못한다. 모든 정책과 행정이 정치적인 성향에 의해 판단되고 결정된다. 결국 국가를 돌리는 행정은 정치에 휘둘려 장기적인 국가 정책을 펼 수 없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천 아시안게임이다. 아시안게임을 선택한 안00시장과 이를 이어받은 송00시장의 유권자들은 서로 날을 세워 공방을 한다. 정책적 판단으로 들여다 보면 잘못된 선택을 한 안00시장과 이를 훌륭히 마무리하지 못한 송00시장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에도 유권자는 정치적인 논리만 갖고 이야기한다. 이러면 백년대계라 하는 국가 운영이 국민을 위한 올바른 선택과 시행이 되기 어렵다. ‘정책이 정치에 휘둘린 결과는 매우 참혹하다.’ 진정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를 원한다면 올바른 투표를 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누구를 찍느냐의 문제가 아닌 어떤 정책을 올바르게 시행 하는가를 우리는 바로 보아야 한다. 여당이 정권을 잡든 야당이 정권을 잡든 유권자가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근래에 사회적 부조리에 항거하는 한 사람을 떠나 보낸 아픈 역사가 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 여기서 우리가 되짚어 볼만한 한가지가 있다. 그를 보낸 것이 정치인 인가? 아니면 유권자인가? 그를 코너로 몰아넣은 정치인을 선택한 유권자가 잘못 이라면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 그를 지지했던 시민들은 무엇을 했나? 유권자끼리 싸움을 해 봤자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제는 정치인의 프레임에 갇혀 놀아나지 말자.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잘 못된 선택을 하면 과감히 그 잘못을 지적하자. 나의 정치 성향을 바꾸지 않더라도 우리는 정치인이 바뀌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유권자의 힘이고 민주주의의 힘이다.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올바른 정치 문화를 물려줘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