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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하소불(丹霞燒佛)

(패밀리) 2018. 1. 13. 10:56

단하소불(丹霞燒佛)


 

추운 겨울 대웅전에 방치된 단하(丹霞, 739~824) 스님이 추위를 쫓기 위해 목불(木佛)을 쪼개서 모닥불을 만들었습니다. 추우니까 불을 쬐어 몸을 녹이려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단하의 행동은 보통 스님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경천동지할 만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당연히 절(혜림사)을 지키던 다른 스님이 깜짝 놀라서 어떻게 스님이 부처를 태울 수 있느냐고 노발대발합니다.

그러자 단하 스님은 너무나도 쿨하게 말합니다.

목불에 사리가 있는지 보려고요.”

당연히 노발대발하던 스님은 말합니다.

나무에 어떻게 사리가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 스님은 깨달았던 겁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목불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말입니다.

나무 토막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목불이 될 수도 있고, 땔나무도 될 수가 있습니다. 아니면 밥그릇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스스로 질문해 보세요. 사찰에 땔나무가 떨어졌다면, 그곳을 지키던 스님은 얼어 죽어야 할까요, 아니면 목불을 땔나무로 써야 할까요? 목불을 지키느라 얼어 죽은 스님이 자유로운 것일까요, 아니면 목불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땔나무로 삼아 몸을 녹인 스님이 자유로운 것까요?



달마 조사(達摩祖師)가 동경(東京)에 이른 뒤에 신광(神光)이란 스님이 있었다. 예전에는 낙중(洛中)에서 오래도록 노장(老莊)의 학문을 익히다가 나이 40을 넘어 조사를 만나 스승으로 섬겼다. 소림사까지 따라오면서 항상 조사에게 법을 물었으나 조사는 전혀 말을 해 주지 않았다. 또 스스로 한탄 하였다.

옛사람은 법을 구하기 위해 뼈를 깨고 골수를 꺼내고 피를 뽑아 성상(聖像)을 그리고 머리채를 풀고 진창에 엎드리며 벼랑에 몸을 던지고 주린 범에게 몸을 주었다. 옛사람은 이렇게까지 했는데 나는 무엇을 아끼랴?’

때는 태화(太和) 10년 12월 9, 법을 구하기 위해 선 채로 밤을 샜는데, 내린 눈이 허리까지 쌓였다. 날이 밝자 조사가 이를 보고 물었다.

네가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고 있었느냐?”

신광이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말했다.

오직 화상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어 뭇 중생을 널리 제도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부처님의 위없는 보리는 여러 겁을 수행해야 하는데, 너는 작은 뜻으로 큰 법을 구하려 하니, 애초부터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신광이 이 말을 듣고 곧 날카로운 칼을 뽑아 자기의 왼팔을 끊어서 조사 앞에 놓으니, 조사가 말했다.

부처님과 보살들이 법을 구할 적엔 몸을 몸으로 삼지 않고 목숨을 목숨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네가 이제 팔을 끊었으니 법을 구할 만하구나.”

마침내 신광이라는 이름을 고쳐서 혜가(慧可)라 했다.

혜가가 말했다.

화상께서는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조사가 대답했다.

네 마음을 가져오너라.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리라.”

혜가가 말했다.

마음을 찾아도 끝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찾을 수 있다면 어찌 그것이 네 마음이겠느냐? 벌써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

조사가 다시 혜가에게 말했다.

너를 위해 이미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는데, 너는 이제 보이느냐?”

혜가가 말씀 끝에 크게 깨닫고 조사에게 말했다.

오늘에야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적(空寂)하고 보리가 멀리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보살은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살반야(薩般若 = 一切智)의 바다에 이르고,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열반의 언덕에 오릅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혜가가 계속 말했다.

조사시여, 이 법을 문자로 기록할 수 있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내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므로 문자를 세우지 않느니라.”

_ 〈제28조 보리달마〉 147쪽~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