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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한국과 주변정세

(패밀리) 2019. 7. 14. 05:51

100년 전 한국과 주변정세 

 
   잠시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자. 1894년 갑오왜란을 일으킨 일제는 1895년 초 북양함대사령부 위공도를 점령함으로써 청일전쟁에 승리했다.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대만 할양과 조선지배권 2억 냥의 배상금, 그리고 요동반도를 할양받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주동한 독·러·프 3국 간섭으로 일본 은 요동반도를 포기해야 했다. 일본이 국제관계의 중요성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3국 간섭으로 일본이 굴복하자, 고종과 명성황후가 급격히 친러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다 집어삼켰던 요동반도를 토해낸 일본우익들의 분노가 향한 곳은, 러시아가 아닌 애꿎은 명성황후였다. 미우라 공사를 비롯한 일본 핵심 엘리트들이 낭인으로 위장하여 명성황후를 처참하게 살해했다. 소위 을미사변이다. 고종은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지자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 했다. 소위 아관파천이다. 고종은 이때 러시아와 일본간의 일시적인 ‘힘의 균형’에 의지해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5천 년 역사에 처음으로 제국을 만들고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게 됐다. 일본은 절치부심 설욕을 준비했다. 1902년 영일동맹 체결이 러일전쟁 승리의 핵심적 발판이 됐다. 영일동맹을 미국이 전폭 지원했다. 러시아의 동맹국 프랑스는 영국과 미국의 견제로 발목이 묶였다. 러 일전쟁 승리 이후 일제는 을사늑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정치를 시작했다. 
 
   1905년 7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자 임시 외무대신이었던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육군 장관 윌리엄 태프트(후에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이 됨) 사이에 맺어진 비밀협약에 따라, 미국은 1882년에 맺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위반하고 필리핀의 미국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교환했다. 1812년 나폴레옹군을 물리친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크림반도·만주·조선 등으로 남하작전을 감행하고, 영국은 1858년 인도를 식민지화 시키면서 북상했다. 1885년 3월부터 4월 러시아는 북부아프가니스탄 판데(Panjdeh) 등 오아시스 지역을 점령했다. 
 
   거문도와 대마도 역시 러시아가 점령하고 싶은 거점지역이었다. 거문도는 대한해협의 길목을 지키는 보스프러스 해협 같은 곳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포트 해밀턴’ 이라고 명명했다(영국은 점령사실을 청, 일에 통보하고 조선에 나중에 통보했으나, 당시 조선 중앙정부는 거문도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 못 했다 고 한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 저지 약속을 받고 22개월 만에 철수한다. 만일 거문도에 러시아 군사기지가 있었다면 러일전쟁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1905년 러시아에 대한 영일 동맹의 승리로 1813년부터 시작된 100년의 그레이트 게임이 종료됐다.
 
   최근 미·일 동맹 및 중·러 협력의 강화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이에 대한 서방의 제재,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인공섬 군사기지화 등 을 보면 러일전쟁 전야와 비슷한 상황으로, 한반도 주변에서 제2의 그레이트 게임이 본격화되는 듯하다. 그간 중국은 미국의 군사력이 남중국해 와 대만해협에 다가서는 것을 거부하는 ‘반접근 (Anti-access), 지역거부(Area denial)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에대해 미국은 호주-인도-베트남대만-필리핀-일본을 연결하는 ‘대(對)중국 포위 전략’과 ‘자유로운 인도태평양 항해전략’을 채택 하여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돌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에 대한 돌파구로 중국이 채택한 ‘일대일로 정책’은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맞물려 상호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 큰 우려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과의 경쟁 구도 문제다. 올해 4월 10일 미국 상원은 한·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3국간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비롯한 군사적, 경제적 협력강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에 대한 압박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군사동맹은 한·미동맹으로 족하고 한·일 군사동맹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한·일간은 미국을 동맹국으로 간접 연결되는 유사동맹인 것이지, 한·미·일 3 각 군사동맹은 아니라는 것이다. 군대보유를 금지하는 일본의 평화헌법에 비추어보더라도 군사동맹 체결은 헌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한·미·일 3각 동맹은 소(小)NATO가 돼 동북아시아에서 중국,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립이 격화될 수 있다. 
 
   중국, 러시아의 군사역량이 증가할수록 견제와 균형을 위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한·미·일 남방 3각과 북·중·러의 북방 3각의 대립구조가 정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로서는 미· 일 이외에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르몽드지 스크랩:20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