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타인의 고통
< 전쟁의 절정: 바실리 베레쉬차긴-1871>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고난일수록 더 관심을 기울인다. 가족, 친구, 이웃에서 동포와 그 밖의 사람으로 범위를 넓힐수록 연민도 동심원을 그리며 넓게 퍼지지만 동시에 옅어진다. 사진을 예로들자. 전쟁 사진의 도덕적 목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쟁과 희생자 가까이 데려가는 것이다. 이는 사진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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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접근성은 인도주의에 호소할 때 중요성이 도드라진다. 이런 호소는 고통받는 아이의 모습을 빌릴 때가 매우 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 존재를 볼 때 편견과 투사에 덜 휘둘린다. 따라서 이들은 잠재적으로 더 보편적인 존재. 즉 우리 중 하나이고 우리 아이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손택이 지적한 대로, 가상 근접성은 역효과를 낼 때가 아주 많다. 폭격으로 먼지를 뒤집어쓴 어느 아이의 모습이나 자그마한 배에 수많은 사람이 빼곡히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이중의 의미를 전달 받는다고 손택은 적는다. "이런 광경은 충격적이고, 부당하고, 바로잡아야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이 일어 난 곳이 여기가 아닌 저곳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 준다."
게다가 이름 모를 타인의 고통을 지켜 볼 때 그 끔찍한 사건이 저기에서 저들에게 일어났다는 생각은 다른 방향, 즉 세상에는 문제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해결하기도 어렵다는 무감각으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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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은 동정심을 믿지 못할 감정이라고 본다. 동정심을 끌어내는 영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저 고난을 일으킨 원인의 공범이 아니야. 우리가 동정심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을뿐더러 결백하다는 표시야."라고 여기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정심은 분노와 대비된다. 분노는 책임감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앙드레 다오: 뉴필로소퍼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