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깃든 감정
10유로짜리 지폐는 다른 10유로 지폐와 완전히 똑같은 가치를 지닐까? 원론적으로 두 지폐의 가치는 같다. 두 지폐의 마모도를 차치한다면, 같은 액면가의 두 지폐는 같은 교환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바로 어떤 경로로 그 돈을 갖게 됐느냐이다. 왜냐하면 돈의 획득 방식이 그 돈의 쓰임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경제학자 비비아나 젤라이저(Viviana Zelizer)는 연구를 통해 이 같은 논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는 “진귀하다고 여기는 대상의 특징은 사람들이 실리에 따라 숫자로 값어치를 책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상업적 영역의 상징인 돈은 나머지 사회적 영역들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만약 우정과 사랑, 건강이나 죽음을 돈과 결부시킬 경우, 법적 금기(장기 거래)부터 시작해 윤리적 비난(매춘)에 이르는 각종 사회적 반발을 일으키게 된다. 앞서 언급한 영역에서 돈이 쓰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좀 더 신중한 대처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학자 파스칼레 트롬페트(Pascale Trompette)는 ‘도덕적 제약’을 크게 받는 상조업계의 사례를 연구했다. 고인을 기리는 데 여념이 없는 유족들은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비교 견적을 요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을 보였다. 이 같은 금기가 엄격히 적용되는 여건에서 장의사는 자칫하면 이익만 좇는 사람으로 여겨지기에 십상이다. 그들은 장례 절차를 모두 설명한 후, 장례 비용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가장 마지막에 언급하면서 유족을 배려해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강요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돈은 거북한 감정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상황에 쉽게 동화되는 특징도 지닌다. ‘돈의 사회적 의미(2005)’라는 연구를 통해 비비아나 젤라이 저는 사람들이 돈을 획득한 방식에 따라 그 돈의 쓰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젤라이저는 이런 경향을 일컬어 ‘돈의 사회적 표식’이라고 명명했다. 그녀는 관련 사례로 자녀를 둔 한 매춘 여성의 경우를 언급했는데, 이 여성은 매춘을 통해 얻은 돈은 술이나 마약을 사들이는 용도로 사용하고, 국가 보조금으로 지급된 돈은 일괄적으로 자녀의 양육비에 할애했다. 이 사례는 돈이 사회적인 ‘표식’을 남긴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즉, 원천적으로 ‘도덕적으로 부정한’ 방법을 통해 획득한 돈을 ‘지고지순한’ 목적에 할애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반면, 더 존중할 만한 방식으로 얻은 돈은 더 가치 있는 일에 쓰인다.
사회학자 나세르 타페랑(Nasser Tafferant)은 그의 저서(『비즈니스-지하경제』, 2007)에서 훔친 물건을 판매하는 젊은이들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데, 여기에서도 앞의 사례와 유사한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법도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얻은 돈은 여가나 유흥으로 탕진해버릴 뿐, 그 돈으로 결코 끼니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그 밖에도 다른 많은 사례를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연말 선물을 사기 위해 저축한 돈이나,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던 옷에 들어갈 돈, 소위 사회적 표식이 붙은 돈을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먹는데 모두 허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사회적 표식이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돈의 동질성이 돈의 표식을 바꾸거나 표식 자체를 제거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런 현상이 초래하는 결과에 있다. 경제 학자들은 대부분 돈이라는 것이 완벽한 균질성을 띤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도덕적인 가치가 하락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어떤 연유로 겉보기에는 관련이 없을 듯한 사회적 관계에 돈이 얽혀있는지, 그 이유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심부름으로 빵을 사온 손주에게 빵을 사고 남은 거스름돈을 건네는 할아버지를 예로 들어보자. 과연 할아버지가 가사도우미 앞으로 노동의 대가를 치르듯이 손주에게 사례금을 지급했다고 설명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으레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건네는 돈은 선물이자 감사의 표시이지, 사례금일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르몽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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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문가들이 어렵게 번 돈을 잘 모으고 싶다면, 돈을 모으려는 목적을 통장 겉면에 기록하라고 조언합니다. 즉. 돈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를 함으로써 돈에 생명을 불어넣으라고 충고합니다. 목적이 명확한 (통장에 이름이 붙은) 돈은 그렇지 않은 돈보다 목적한 바를 이룰 가능이 더 높습니다. 이는 돈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돈을 모으는 목적을 기록하는 것 외에도 나의 가치를 담는 행위입니다. 또한, 돈에 감정을 넣는 행위이기도 하죠. 결국 목적한 바에 따른 이름이 붙은 화폐라는 물질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명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결국 돈이 갖는 가치는 상승하게 되고 돈을 모으는 재미가 붙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은 결코 허투루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