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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과 무소유

(패밀리) 2020. 6. 17. 19:21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작, 더 클래식 126p~130p)

-주교의 온정 (전문)

 

이튿날 해 뜰 무렵, 비앵브뉘 예하는 뜰을 산책하고 있었다. 마글루아르 부인이 그에게 헐레벌떡 뛰어왔다.

마글루아르 부인이 물었다.

"주교님, 은그릇 바구니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주교가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정말 다행이군요. 전 또 무슨일이 일어난 줄 알고요."

주교는 방금 꽃밭에서 그 바구니를 찾았다. 그는 부인에게 바구니를 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릇은요?"

"아니, 부인이 걱정하는 게 은그릇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잘 모르겠는데."

"어쩌면 좋아요. 도둑맞은 거예요. 어제 왔던 그 사내가 홈쳐간 거라고요!"

마글루아르 부인은 재빨리 기도실로 뛰어갔다가 주교에게 돌아왔다. 주교는 화단에 앉아 바구니가 땅에 떨어졌을 때 꺾인 기용의 물레나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글루아르 부인의 고함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교님, 그는 달아났어요. 은그릇을 도둑맞았다고요."

그녀는 뜰 건너편을 보았다. 담장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담 추녀가 무너져 있는 게 보였다.

"저기예요. 저걸 넘고 코슈빌 거리로 도망 쳤어요!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일이! 우리 은그릇을 홈쳐 가다니!"

주교는 가마히 서 있다가 마글루아르 부인에게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 은그릇이 우리 물건이었던가요?"

마글루아르 부인은 넋이 나가 멍하니 듣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글루아르 부인. 다 내 잘못입니다. 우리가 그 은그릇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 사내는 어땠습니까? 가난한 사람이었지요?"

"그게 대체 무슨말씀이세요!"

마글루아르 부인이 말을 이었다.

"저나 아씨 때문이 아니예요. 저희는 상관없어요. 하지만 주교님은 앞으로 어떻게 음식을 드시겠어요?"

주교가 깜짝 놀라 노부인을 바라보았다.

"무슨 걱정입니까? 놋그릇이 있는데!"

마글루아르 부인이 고개를 떨궜다.

" 그 놋그릇은 냄새가 나요."

"쇠그릇이 있지 않습니까?"

마글루아르 부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쇠에서는 이상한 맛이 나요."

"그럼 나무 그릇을 쓰면 되겠군요."

잠시 뒤 주교는 어제 장발장과 나란히 앉앗던 그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비앵브뉘 예하는 아무 말없이 앉아잇는 누이동생과 중얼거리는 마글루아르 부인에게 빵을 우유에 적셔 먹으니 스푼이 필요 없다며 유쾌하게 떠들엇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마글루아르 부인은 웅얼거렸다.

"그런 사내는 왜 집에 들여서! 바로 옆에서 재울 수가! 물건만 훔쳐 갔기에 망정이지! 정말 상상만 해도 소름끼쳐!"

두 남매가 식탁에서 일어설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오"

주교는 말했다.

문이 열렸다. 건장한 세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헌병이었는데 한 사람의 멱살을 붙잡고 있었다. 그 한 사내는 장 발장이었다.

대장 헌병이 주교 앞으로 와서 경례를 했다.

"예하."

그 말을 듣자 힘없이 축 처져 있던 장 발장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예하라고?"

장 발장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임 사제가 아니고요?"

"헛소리하지 마라."

헌병이 말을 이었다.

"이 분은 주교 예하시다.!"

주교는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겁니까?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나는 촛대도 선물했는데 이것까지 합치면 200프랑은 될 겁니다. 왜 빠뜨리고 그냥 갔습니까?"

장 발장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서 주교를 바라보았다.

"예하!"

대장 헌명이 말했다.

"그럼 이자가 한 말이 사실입니까? 이 사내는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불러 세워 조사를 했더니 은그릇을 갖고 있었어요."

"이렇게 말했습니까?"

주교가 나직이 웃으며 그들의 말을 막았다.

"어제 하룻밤을 묵게 해 준 늙은 주임 사제가 주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오해를 했군요."

"정말 그렇다면야."

대장은 말했다. "그럼 풀어 주겠습니다."

"그래야지요."

주교가 대답했다.

장 발장은 헌병들에게서 풀려났다. 그는 아직도 겁을 잔뜩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풀어 주는 겁니까?"

"그래, 왜? 도로 잡리고 싶나?"

헌병이 말했다.

주교가 말했다.

"잠깐만, 여기 은 촛대가 있습니다. 이것도 가져가야지요."

주교는 벽난로로 가서 은 촛대를 들고 와 그에게 주었다. 두 노부인은 아무 말없이 주교가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장 발장은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넋이 나간 채로 은 촛대를 받았다.

"그럼, 이제 가 보시지요.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길 쪽 정문으로 와도 됩니다. 문은 언제나 손잡이만 돌리면 열리니까요."

그리고 헌병들에게 말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그럼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헌병들은 돌아갔다.

장 발장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주교는 그에게 가까이 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이 은을 판 돈은 당신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을요."

주교와 약속한 기억이 없는 장 발장은 멍하니 서 있었다. 주교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내 형제 장 발장이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헤서 당신의 영혼을 샀습니다.나는 당신의 영혼을 음울한 곳에서 구원하여 하느님께 바칠 겁니다."<끝>

 

 

무소유 (법정스님저, 범우사 2101년 출판본)

- 탁상 시계 이야기 중에서(46p~47p)

 

... 지난해 가을, 새벽 예불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큰 법당 예불을 마치고 판전(板殿)을 거쳐 내려오면 한 시간 가까이 덜린다. 돌아와 보니 방문이 열려 있었다. 도둑이 다녀간 것이다. 평소에 잠그지 않는 버릇이라 그는 묵사통과였다. 살펴보니 평소에 필요한 것들만 골라 갔다. 내게 소용된 것이 그에게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가져간 것보다 남은 것이 더 많았다. 내게 잃어버릴 물건이 있었다는 것이, 남들이 보고 탐낼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잖이 부끄러웠다.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젺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기 마련이라 생각하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어쩌면 내가 전생에 남의 것을 훔친 그 과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빚이라도 갚고 난 듯 홀가분한 기분이다.

 

그런데, 그는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가 싶어 있는 것 없는 것을 샅샅이 뒤져 놓았다. 잃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애석하지 않았는데 흐트러 놓고 간 옷가지를 하나하나 제자리에 챙기자니 새삼스레 인간사가 서글퍼지려고 했다.

 

당장에 아쉬운 것은 다른 것보다도 탁상에 있어야 할 시계였다. 도군이 다녀간 며칠 후 시계를 사러 나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을 허름한 것으로 구해야겠다고 작정. 청계천에 있는 어떤 시계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 허허. 이거 어찌된 일인가. 며칠 전에 잃어 버린 우리 방 시계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다. 그것도 웬 사내와 주인이 목하(目下) 흥정중이엇다.

 

나를 보자 사내는 슬쩍 외면했다.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못지않게 나도 당황했다.

 

결국 그 사내에게 돈 천 원을 건네 주고 내 시계를 내가 사게 되었다. 내가 무슨 자선가라고 그를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어슷어슷한 허물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처지인데.뜻밖에 다시 만난 시계와의 인연이 우선 고마웠고, 내 마음을 내가 돌이켰을 뿐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