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윤동주-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 '우러르다'라는 표현을 우리말 사전에서는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 하나는 '위를 향하여 고개를 정중히 쳐들다.'라는 말과 '마음속으로 공경하여 떠 받들다.'라는 풀이다. 윤동주의 '서시'에서는 '우러르다'라는 표현에 대해서 어떤 해석을 붙여도 같은 의미로 전달된다. '하늘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쳐든다.'로 해석하거나 '하늘을 향해 그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공경하고 떠 받들다.'로 해석하든 간에 구절이 전달하는 의미는 오로지 하나를 향해 있다.
윤동주는 서시의 첫 구절을 통해서 도덕적인 가치 기준을 분명히 전달 하고있다. 이는 자신이 다다르고자 하는 도덕적 가치와 같다. 시인은 '하늘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떳떳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죄를 짓고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없다. 죄인은 사람의 시선조차 부담스러워 오로지 땅만 바라본다. 결국 정중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바라볼 수 있는 사람. 하늘을 향해 공경하고 떠 받드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기 평가가 따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시인은 이 구절로 ' 스스로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어야 한다.'는 도덕적 가치 기준에 방점을 찍는다. 아주 사소한 부끄러움 조차 없어야 한다. 이것은 치열한 자기 성찰을 의미한다. 도덕적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어릴 적에 저지른 잘못 조차 반성한다는 의미다. 그래야지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지 않은가? 단지 '어리다는 이유'나 '어쩔 수 없는 실수'라는 이유로 잘 못을 용서받을 수 없다. 타인은 자신을 용서하더라도 스스로는 반성하고 뉘우치는 자기 성찰은 인간의 근본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수행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잎새에는 항상 바람이 인다. 바람의 새기가 크든 작든 간에 잎새는 항상 바람이 인다. 결국 윤동주 시인은 항상 괴로워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항상 곱씹으면서 살았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잘못을 하면 본능적으로 그 잘못을 감추려 든다. 잘못의 정도가 크고 잘못에 따른 반대급부로 돌아오는 이익이 클수록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에 바쁘다. 하물며 이를 계속 곱씹으면서 반성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해서 '창씨개명'을 하는 죄를 저질렀다. 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양심적 애국심을 파는 행위를 한 것이다. 이런 행동이 스스로 추구하고자 했던 도덕적 가치 기준에 맞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것이다. 시인은 '참회록'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죄를 스스로 뉘우쳤다. 물론 글 하나 적는다고 자신의 모든 죄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괴로워하지 않는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별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했던 대상이다. 별은 동경의 대상이자 자기 회복을 위한 도구이다.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꾸는 이상향을 노래하니 결국 자기반성에 따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별은 밤에 뜬다. 밤은 기운을 회복하고 본성을 되찾는 시간이다. 맹자는 인간이 낮동안 혼탁한 세상에 휘둘려 마음(양심)이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밤에는 쉬면서 그것을 보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밤은 회복의 시간이고 별은 그것을 보여주는 사물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왜 사랑하는 대상이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왜 사랑하고 싶은 대상이 죽어 버린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사랑하면 그만일 텐데 시인은 왜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 싶다는 것일까? 죽음이 자기 고민이나 자기 연민의 마지막을 뜻 한다면 죽어가는 것은 가장 괴로운 단계가 아닐까? 스스로 끝없이 괴로워하며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는 본인이 결국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듯이 모든 죽어가는 대상을 사랑으로 감사 안아 대상의 괴로움을 치유해 주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것이 식물이라 할 지라도 모든 생명체는 죽어 갈 때가 가장 괴롭다. 자신이 생명의 끈을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인가? 그러한 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자신이 대신 괴로워하겠다는 의미이니 따듯한 사랑과 함께 숭고한 희생이 갖는 의미가 너무 깊다. 이 부분까지 읽으면 눈물이 나 더 이상 읽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시인은 자기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 많은 반성과 성찰을 통해 얻은 깨달음(각성)은 결국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옳은 길을 원 한다면 스스로에게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그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이는 자유의 표현이다. 체제나 상황에 얽매여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마치 우리에 갇힌 돼지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시인은 그 우리를 열고 바깥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겠다는 표현이니 결국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위한 길을 스스로 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결국 시인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 어려운 길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동경해 마지않는 별조차 바람에 흔들리니 결국 잎새에 이는 바람이 별에도 인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는 많은 철학적 요소가 담겨있다. 공자와 맹자로 대변되는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사양지심)은 물론 루소로 대표되는 연민의 정이나 데카르트가 말하는 자기 성찰이 모두 들어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서시의 전반부인 ~나는 괴로워했다.뒷부분을 차마 읽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이 저지른 원죄를 씻기 위해 항상 회계하는 추기경조차 시인의 고뇌를 읽으니 차마 뒷부분은 읽지 못하겠다는 말이니 시인의 고뇌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