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작 노트/▷ 작 품 집 9

사랑 초기화

사랑 초기화 "우리 심심한데 결혼이나 할까?" 영화 대사 같은 무미건조한 결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략결혼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끌려 결혼한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결혼은 지방 뺀 닭가슴살을 물 없이 먹는 것 같은 뻑뻑한 고통을 동반한다. 이런 결혼은 이면에 어떤 목적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나도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다. 지금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 물론 아내가 미울 때가 있다. 또. 때로는 아내가 보기 싫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에는 변함없다. 아내를 향한 내 사랑의 조건이 변할 리도 없거니와 사랑의 의미가 변질되거나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내에 대한 내 사랑은 호수에 비유할 수 있다.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마찰은 넓은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

[자작 단편 소설] 마지막 전우

마지막 전우 물방울이 얼굴에 닿는 느낌이다. 왼쪽 눈을 뜬다. 조심스럽게 살며시 뜬다. 눈썹이 말라 붙었는지 눈 뜨기가 힘들다. 양쪽 눈을 다 뜬다. 힘겹다. 물방울 하나가 오른쪽 눈에 떨어진다. 시야가 일렁인다. 물방울은 비다. 비가 내린다. 한 방울은 입술에 한 방울은 눈썹 아래 떨어진다. 빗 방울이 제법 굵다. 조금씩 늘어나던 빗 방울이 금새 많아진다. 혀로 입술을 핥는다. 말라붙은 입술이 촉촉해 진다. 비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다. 입을 벌린다. 목 젖 사이로 빗물이 타고 흐른다. 입 안에 빗물이 고인다. 한 방울. 두 방울. 빗물이 고인다. 비가 가득 고이면 삼킨다. 한번 더 빗물을 삼킨다. 달다.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서인지 단 맛이 난다. 오른 손을 들어 눈을 훔친다. 더러워진 손 마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