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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초기화

(패밀리) 2021. 10. 3. 12:12

사랑 초기화

 

"우리 심심한데 결혼이나 할까?"

영화 대사 같은 무미건조한 결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략결혼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끌려 결혼한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결혼은 지방 뺀 닭가슴살을 물 없이 먹는 것 같은 뻑뻑한 고통을 동반한다. 이런 결혼은 이면에 어떤 목적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나도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다. 지금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 물론 아내가 미울 때가 있다. 또. 때로는 아내가 보기 싫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에는 변함없다. 아내를 향한 내 사랑의 조건이 변할 리도 없거니와 사랑의 의미가 변질되거나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내에 대한 내 사랑은 호수에 비유할 수 있다.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마찰은 넓은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것과 같다. 가끔 던져지는 돌멩이 하나에 호수가 뒤집어지진 않는다. 물론 돌멩이를 꾸준히 던지면 언젠가는 호수 바닥이 돌멩이로 가득 찰 것이고 이 때문에 호수는 메말라 버릴 것이다. 그러면 호수는 더는 사랑과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의 호수가 메마를 정도로 돌을 던지려면 백 만년 동안 매일 돌멩이를 던져야 하거나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돌멩이를 한 번에 들이부어야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방법으로도 내 마음속 호수가 마를 날은 오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나는 호수 바닥에 쌓인 돌맹이를 퍼올려 버리는 일을 꾸준히 한다. 호수 바닥에 쌓인 아내에 대한 불만의 찌꺼기를 퍼내는 일이다. 이른바 사랑을 초기화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호숫물의 수질을 항상 좋은 상태로 관리하고 적당한 깊이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내가 아내에 대한 순도 높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랑을 초기화를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내가 사랑했던 아내의 과거로 나를 되돌리는 방법이다. 상상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하는 셈이다. 가슴 뛰던 그 기억을 다시 되살려 곱씹는 일을 자주 한다. 첫 키스의 긴장감을 느끼고 손가락으로 전해졌던 그때의 짜릿함을 다시 되새기면 내 사랑의 순도는 예전 상태로 높아진다. 그렇다고 과거 아내 모습을 현재 아내에게 투영시키진 않는다. 지금 아내는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아내처럼 젊지 않기 때문이다. 얼굴에 주름이 늘고 살아온 세월만큼 배에 지방이 쌓여 몸이 불어도 지금 아내를 여전히 사랑한다. 아내의 젊은 시절은 젊은 시절대로 사랑했다면 지금은 나이가 든 만큼의 멋스러움이 있다. 여전히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주름과 아내의 뱃살과 아내의 기미를 외면하지 않는다.

 

두 번째 방법은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아주 가끔 새벽에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혼자 책상에 앉아 상상한다. 조명이나 커피는 사치품이다. 암흑 속에서 나는 나를 깊은 죽음으로 끌고 간다. 어떻게 죽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 그 자체가 상상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내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내를 더는 볼 수 없는. 죽은 나를 안타까워한다. 내가 놓고 가야 할 소중한 사람들과 이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하다 보면 이런 것들이 내게 주는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일상 속에 변질된 내 마음을 정화하는 작업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슬픔을 잘 다독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죽음을 밀어낼 것이 아니라 내 곁에 두는 방법이다. 언젠가 현실로 마주칠 죽음을 겸허하고 아름답게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위 있게 죽기 원한다. 삶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끈을 이어가기보다 우아하면서 쿨하게 삶의 끈을 놓고 세상과 작별하는 방법 말이다. 품위 있는 죽음은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만 가능하다. 내가 그동안 소유했던 소유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죽음 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동안 사랑했던 모든 사람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방법도 죽음과 연관된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모든 것을 품위 있게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려면 살아있는 동안 아쉬움 없는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랑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 

 

죽음을 상상하고 나면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위해서 다시 사랑하고 싶어진다. 내 건강을 챙기거나 좀 더 조심히 생활해야겠다는 다짐은 덤으로 따라온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기 마련이다. 나에 대한 아내의 사랑이 소원해졌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상대적이기에 내가 사랑하는 만큼 아내도 나를 사랑하게 되어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흔히 "당신이 이러니깐 내가 그러는 거야"라는 말은 타인에 종속된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냥 내가 원하는 내 사랑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자면 사랑에 쌓여가는 먼지를 털고, 세월 속에 빛바랠 때쯤이면 다시 초기화를 해야 한다. 처음 시작된 사랑이 언제나 영원하길 바라는 것은 나의 게으름에 대한 유치한 변명에 불과하다. 처음 사랑이 변하지 않도록 내 사랑을 끊임없이 돌봐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