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2] 베니스의 상인-윌리엄 세익스피어
포오셔:
자비의 본질은 강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하늘에서 대지 위로 내리는
고마운 비와 같습니다. 이것은 이중의 축복으로
베푸는 자와 받는 자를 동시에 축복해줍니다.
이것은 가장 위력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왕좌에 오른 임금을 왕관보다 더욱
임금답게 해줍니다. 임금의 홀은
지상 권력의 상징이며 위풍과 존엄의 표지로
거기에는 임금의 위엄과 황공함이 깃들어 있지만
자비는 그 홀이 상징하는 위력을 초월하여
임금의 가슴속 옥좌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친히 지니신 덕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자비심을 발휘하여 처벌을 완화시킬 때에
지상의 권세는 비로소 하느님의 권세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여, 비록 당신이 요구하는
심판이 정당한 것이기는 하나, 이 점을 고려해보시오.
즉, 심판하여 처벌하는 것만을 고집한다면
누구도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도 자비를 위해서 기도드리며, 이 기도는
또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것은 당신이 집요하게 요구하는
처벌에 대한 주장을 완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계속해서 당신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엄격한 베니스 법정은 필연적으로 저 상인에게는
불리한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 문학동네-이경식 번역 ‘베니스의 상인’ 118페이지 9행에서 119페이지 10행까지의 내용 발췌)
위 장면은 유대인 샤일록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가 재판을 받는 장면입니다. 포오셔는 벨몬트의 상속녀이자 안토니오의 친구 바싸니오의 구혼자입니다. 그녀는 변호인으로 위장(남장)하여 재판장에서 화려한 언변과 번뜩이는 재치로 안토니오를 죽음에서 구해줍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자비>와 <우정>입니다. 특히 포오셔는 법정에서 판사를 향해 샤일록에게 자비를 배풀어 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것은 <왕의 권위>를 초월한다고 역설합니다. 왕을 능가하는 권위는 오로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권위죠. 하나님이 지닌 덕(德)이 바로 자비(慈悲)이므로 왕권을 초월한 신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비를 베푸는 것은 신을 대신해서 그것(자비)을 받는 사람을 구원하는 행위입니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신)의 절대적 영역이지만, 그 권한을 대신 행사함으로써 신과 동등한 위치가 됩니다.
인류가 신앙을 만들면서 신의 권위는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절대 권위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권이 약화되고 인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신의 일이 너무 많아 인간에게 신권을 대행하게 했으니 신의 대리인이 등장한 것이죠. 근세기 들어 신권은 왕권과 더불어 더욱 약화 되었고 드디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까지 인간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왕과 교황에게 주어졌던 신의 권한이 재판장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포오셔의 대사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는 샤일록과 안토니오가 한 계약의 문제와 당시 시대 상황을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계약 문제
우선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계약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싸니오는 벨몬트의 상속녀 포오셔에게 구혼 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돈을 빌려줄 만한 재력을 가진 친구는 안토니오가 유일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전 재산을 무역선에 투자했기에 빌려줄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바싸니오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서 돈을 빌리는데 필요한 담보를 대신 제공합니다. 담보는 바로 자신의 살 1파운드입니다. 바싸니오는 신체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에 반대하지만, 안토니오는 무역선이 안전하게 도착하면 빌린 돈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안심시킵니다. 평소 자신을 핍박한 안토니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샤일록은 선뜻 돈을 빌려주고 약속한 시간에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를 재판에 고발합니다.
<신체를 담보하여 돈을 빌리는 행위가 정당한가?>를 짚어 보기 전에 안토니오가 샤일록을 핍박한 역사적 배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극본의 중요 내용은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원한 관계지만 넓게는 기독교도와 유대교도 사이의 뿌리깊은 원한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인 샤일록은 고리대급업자입니다. 이 직업과 관련해서 성서에는 여러번 언급됩니다.
- 가난하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고리대금업자처럼 행세하여 이자를 받으려 하지 마라 (출애굽기 22:25)
-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꿔주어서는 안 된다. 돈이든 곡식이든 또 그 밖의 어떤 것이든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 (신명기 23:19~20)
-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말고 꾸어 주어라 (누가복음 6:35)
이슬람교, 불교와 더불어 인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탄생이래(유대교)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시기인 1700년대 후반까지 서양 역사를 지배했던 종교입니다.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노플의 ‘밀라노 칙령’에 따라 기독교가 공인된 서기 313년 이후 1500년 이상 기독교 근본주의(정교합일) 사회가 계속된것이죠. 말 그대로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모든 정치, 경제, 사회활동이 이루어지던 시기였으니 문학 작품도 기독교와 뗄수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고전 명작 대부분은 기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기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동양. 특히 한국은 신라에서부터 고려까지 1000년에 걸쳐 불교가 국교였으니 한국 고전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와 관련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살수 있는 이유는 몸을 사용하여 식량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노동에 따른 결과물로 인간은 생존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땀 흘려 가꾼 것을 진정 가치 있는 결과물로 인정합니다. 땀 흘린 노동의 결과가 무엇보다 우선한 가장 신성한 것이라 했으니(이는 후에 노동가치설로 발전합니다.) 이와 대비되는 불로소득은 부도덕한 것으로 금기시했습니다. 불로소득 중에서 고리대금은 타인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땀 흘리지 않고 손쉽게 돈을 버는 일입니다. 특히 상대방이 돈 갚을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 빌려주는 행위는 사람의 고혈을 빨아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행위로 악마나 할 법한 행위로 치부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현재도 유효하여 불로 소득에 대해서는 과중한 세금을 부과합니다. 실예로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원인은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조건의 변화와 정부가 정책에 따라 환경을 조성하는 영향 등 부동산을 사고, 파는 개인의 노력 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서 개인의 이익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모든 국가는 부동산 투기를 고리대금과 같이 서민의 고혈을 빨아 돈을 버는 행위로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만들어진 법이 양도세나 종부세같이 부동산 관련 세금입니다. 이런 고리대금에 대한 부정적 논리는 인류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으로 종교나 인종, 국가를 뛰어넘어 인류 공통으로 갖고있는 보편적 의지입니다. 특히 성서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라 했으니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와주는 것이 도리입니다. 하물며 성서에서 금기시하는 고리대금을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유대인이 하고 있으니 중세시대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인의 시선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대인은 기독교의 선지자라 할 수 있는 예수를 죽인 종교이니 같은 하느님을 믿더라도 뿌리깊은 원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결국 안토니오가 샤일록을 저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대인에 고리대금업자입니다. 게다가 수전노라서 사회적 평판이 좋을리 없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재판은 포오셔의 재치 있는 판결 덕분에 안토니오는 풀려나고 샤일록은 몰락하게 됩니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샤일록의 입장에서는 차용증에 쓰여있는 내용대로 고발을 진행한 것이기에 다소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차용증을 작성한 과정은 어느 일방의 고집에 따라 작성한 것이 아닌 샤일록의 제안을 안토니오가 수락하고 작성했기에 샤일록이 억울한 토로를 할 만한거죠. 현재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절차가 완성된 차용증서는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을 인정받기에 샤일록은 피 한 방울 이란 조건과 관계없이 안토니오의 살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신체를 담보한 차용증서는 그 자체로 법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포오셔는 첫번째 판결로 샤일록의 고발을 수용합니다.
포오셔의 재판은 셰익스피어가 신권(神權)과 인권(人權)의 중간지점을 절묘하게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차용증 내용에 따라 판결한 법적조건은 인권과 관련되어 있으며, 자비는 신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중세 시대는 신의 대리인의 자격을 가진 교황(혹은 주교)이 왕을 임명합니다. 신권이 왕권 위에 존재하는 것이죠. 하지만 신권이 강하면 왕권이 약해집니다. 왕권신수설은 왕의 정통성을 위해 필요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신권과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즉, 시민의 정신을 지배하는 교황과 현실을 지배하는 왕권의 다툼이 극심했던 시기가 바로 중세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서 희극의 구도를 ‘선(善)’과 악(惡)’으로 설정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걸어온 민족의 아픈 역사를 들여다보면 고리대금업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기독교도에게 차별받는 유대인의 억울한 사정을 대변하는 대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책 28, 29, 75페이지) 셰익스피어는 재판정에서 선악의 대결보다 유대인과 관련된 현실적 사회 문제를 꼬집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서 상속받은 재산을 목적으로 포오셔에게 접근한 바싸니오와 그것을 알면서도 사건에 개입한 안토니오의 행동이 오히려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의견도 충분히 공감가는 거죠.
재판 과정에서도 법치주의를 내세운 정치사상에 기대어 공정한 재판이 진행된다면 안토니오는 당연히 죽어 마땅합니다. 공증까지 받은 계약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회 질서를 부정하고 왕권이 심각히 추락하는 결과가 나타나게됩니다. 인간의 권위가 추락하게 되는거죠. 그래서 포오셔는 법치주의에 기반한 판결을 내려 왕권. 다시말해서 인간의 권리를 옹호합니다. 그렇다고 안토니오를 무자비한 죽음으로 몰아가지도 않습니다. 포오셔는 신의 자비를 내세워 피 한방울이라는 조건을 달아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차용증의 헛점을 노린 것이지만 이면에는 신의 권능인 자비를 시행한 것이죠. 결국 법치주의라 할 수 있는 인권과 신의 자비 사이에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셈입니다. 이렇듯 셰익스피어는 왕(인간)의 명령인 법과 신의 명령인 자비를 대립적으로 내세워 어떤 것이 옳은지를 선택하기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린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물론 제판의 결과는 법 보다 자비를 위에 내 세워 진정한 인간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줍니다. 솔로몬에 뒤지지 않는 명판결을 내린 거죠.
2. 인간의 중요한 가치
포오셔의 대사에 등장하는 자비는 인간의 근본인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비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불교에서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애는 마음으로 이해됩니다. 유교에서는 인간 본성에 내제된 4가지 마음(양심)인 사단(四端) 중에서 가장 중요한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맨더빌은 그의 저서 ‘꿀벌 이야기(1723)’에 죄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근본적인 모습은 바로 '연민의 정'이라고 했습니다. 펠레로우스도 ‘알렉산드로스’에서 ‘가장 부드러운 마음이야말로 /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 자연이 인류에게 보낸 눈물이 그 증거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 근본을 이야기하는데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사랑=자비=연민의 정’입니다. 철학자 루소 역시 인간의 가장 부드러운 마음이야 말로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니 그것은 자연이 인류에게 보낸 눈물이 바로 그 증거라 했습니다. 인간이 종을 보존하고 번영하는 것은 오로지 타인을 사랑하는 연민의 정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세를 관통하는 기독교에서도 향주 3덕(向主三德)이라 하여 성령이 인간에게 불러일으키고 인간이 하느님에 대해 가져야 할 세 가지 덕목으로 믿음, 희망, 사랑이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결국, 베니스의 상인을 대표하는 포오셔의 변론의 핵심은 타인을 사랑하는 자비입니다. 그 자비가 성서에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샤일록은 개인적인 복수심에 자비를 베풀지 않습니다. 특히 기독교에서 가장 큰 죄로 여기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기에 더 큰 벌을 받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7가지 큰 죄는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방탕으로 ‘P’로 표시됩니다.)
3.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들.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포오셔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금, 은, 납으로 된 세 개의 상자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시험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금, 은, 납 상자 이벤트는 한국 전래동화인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와 비슷한 이벤트입니다. 이는 동, 서양 문명이 서로 분리되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발전해 왔다는 증거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와 콩쥐 팥쥐가 비슷한 이야기로 진행되며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 이야기인 ‘빨간 망토’와 홀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 이야기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의 구도가 같습니다. 고전 ‘별주부전’과 같은 이야기가 인도에서도 고전 이야기로 전해진다는 강성용 교수의 말처럼 세계 문명은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 발전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니스의 상인은 진정한 우정과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돈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면서 당시 여자의 사회적 위치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장조하는 대목도 등장합니다. 이렇듯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으니 하나하나 찾으면서 읽어보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은 대사로만 이루어진 작품이기에 일반 소설과 달라 읽기 불편하신 분은 알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을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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