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7.성실겸손(誠實謙遜)

(패밀리) 2021. 3. 30. 21:51

성실겸손(誠實謙遜): 정성스럽고 참되며 남에게 나를 낮추어 순하게 대한다.

 

성실은 정성스럽고 참된 자세이고, 겸손은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성실을 이야기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된 모습입니다. 성(誠)은 <참>되고 <진실>함을 뜻하고 실(實)은 <바탕>이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거짓없는 진실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항상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를 뜻하는 것이죠. 진리(眞理)는 세상의 참된 이치(理致)입니다. 세상의 참된 이치를 간단히 설명하면 해가 뜨고, 지는 것. 생명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것이니 아주 간단한 자연의 흐름속에 진리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 만물의 법칙에는 거짓됨이 없습니다. 마치 물흐르듯 흘러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늘 한결같고 늘 변함이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항상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자연의 이치를 통해서 인간도 한결같은 같은 모습-도(道)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한결 같은 자세를 추구하는 것은 <신(信)>에 해당합니다. 유가(儒家)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한결같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신(信)이라 했습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네가지 본성입니다. 동물과 다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것으로써 <사단(四端)>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단을 추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신(信)>이라고 했습니다. 

 

겸손(謙遜)은 나를 낮추는 것으로써 <마땅히 공을 이루고 명성을 얻었으면 물러가는 것이 하늘의 도>라는 노자의 말로써 충분히 설명이 가능합니다. 노자는 개인 수양으로 <황로지도(黃老之道)>를 강조 했습니다. 활을 쏘다 보면 잘 맞는 날이 있습니다. 때로는 큰 성과를 이루는 날도 있죠. 시합 성적이 좋아 등수에 들 수도 있고, 단체에 대표가 되어 시합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개인적이거나 단체가 이룬 높은 성과는 모두 타인이 부러워 할만한 업적이나 영광입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 자칫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겸손은 이런 때 일 수록 더욱 몸가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룩한 업적이나 명성은 모든 사람이 다 잘알고 있습니다. 단지 나를 높게 보는 타인의 시선을 자신은 느끼지 못할 뿐이죠. 세상 사람의 칭찬이 모두 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룬 공이나 업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를 나타낼려고 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조용히 있으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물러서지 않으면 언젠가는 화를 면하지 못한다는 입신처세의 원칙중 하나입니다.

 

사실 제가 이 글을 쓰는것도 어찌보면 겸손하지 못한 자세 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지식의 쪼가리를 마치 세상일에 도통한 듯이 쓰고 있는 것도 겸손하지 못한 태도라고 볼 수도있는 것이죠. 그래서, 항상 어렵기에 조심하기도 합니다. 또한, 겸손은 늘 배우는 자세를 가지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죠. 다르게 표현하면 타인에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배우는 과정중 하나입니다. 정제된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알기도 하고 모르던 것을 배우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은 끝이 없습니다. 잠시 정신을 놓으면 쉽게 타락하고 쉽게 유혹에 빠져들죠. 그러니 항상 올바른 마음을 갖고 선(善)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의 바탕은 겸손에 있습니다. 내가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늘 배우는 마음과 자세를 통해 나를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죠. 그러자면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항상 머리를 숙이고 가르침을 받기위한 자세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겸양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겸손은 <사양지심과(辭讓之心)>과도 상통합니다. 사양지심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사양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은 <예(禮)>에 해당합니다. <사양지심 예지단야(辭讓之心 禮之端也)>라고 해서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가 된다>는 맹자의 말입니다. 즉 인간 본성중 하나인 <사양>은 <예>를 따르는 것으로써 나타난다는 해석입니다. 사양은 왜 예와 통하는 것일까요? 예는 마땅히 지켜야할 규범과 같습니다. 과거에 <예(禮)>라고 하는 것는 지금으로 치면 일종에 법률중 하나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선물을 줍니다. 그런 선물이 선의(善義)의의 선물일 수도 있지만 훗날 자신의 발목을 잡는 뇌물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모른는 차이는 사양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치를 알고나면 그 선물이 감사히 받을 선물인지 아니면, 받아서는 안되는 선물인지 나의 태도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에는 예절을 지키는 것은 사양지심을 기르는 것이고 이것은 겸손과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실겸손에 대한 뜻을 가까운 부분과 먼 부분까지 간단하게 확인했습니다. 참고로 박상원(성균관 대학교)의 다른 해설을 아래에 덧붙여 봅니다.

- 성실겸손은 성실하고 겸손하라는 뜻이다. 이 부분은 활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갖춰야 할 상호간의 예의다. 활터에서 활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범으로만 규정돼 있다. 이것을 잊고 각자 한 마디씩 궁체와 과녁을 맞추는 방법에 대해 말을 한다. 겸손이 몸에 배지 않아 생기는 일들이다. 활을 배우는 사람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도(道)는 한 사람이 전해야 한다.(박상원-성균관 대학교)<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