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의 다른 점은 기록이다.
말을 기록으로 남기려면 녹음을 하거나 글로 옮겨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글은 그 자체로 기록이 된다. '한번 내 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라는 점에서는 말도 글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말이 가지고 있는 파급력에 대한 설명이지 말이 가진 고유한 기능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글과 비교했을 때 말의 가장 큰 특성은 바로 '휘발성'을 들 수 있다. 말은 글보다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특히 감정에 휩싸여 들은 말은 휘발성이 더욱 강하다. 예를들어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어떤 자료나 근거 보다는 개인 감정에 지우친 논쟁을 벌인다면 논쟁 후에 두 사람이 기억하는 상대방의 이야기가 얼마나 될까? 아마 상대 이야기는 고사하고 본인이 어떤 말을 내 뱉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말이 가진 휘발성에 더해 기억이 가진 '왜곡'이란 절차를 거친 결과다.
그렇다면 글은 어떨까?
물론 글도 기억에 의존하여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 왜곡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활자화 되는 과정 자체가 기억의 검정과정이 된다. 일기를 쓸 때 그날 있었던 중요한 기억을 회상한다. 그 회상이 맞는지 틀린지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냥 하루의 일과에서 중요한 에피소드를 찾는 회상을 한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글을 쓰는-과정에서 그 기억이 올바른 기억인지 틀린 기억인지 검증한다. 내가 '버스를 탔다.'고 느꼈지만 글 쓰는 과정에서 '택시를 탔다.'로 올바르게 고칠 수있는 과정을 거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글은 말보다 더 정확한 기록물이 된다. 그리고 그 기록물에 대한 책임역시 말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중에게 하는 말이나 타인의 손을 거쳐 기록된 글은 기록물에 버금가는 지위를 부여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들은 이런 말과 글의 차이 때문에 활자화 된 공약집을 들여다 보기 보다는 후보자의 말을 듣는것을 더 선호한다. 이는 우리 스스로 검정이 필요한 절차에 대한 부담때문이다. 말은 글 보다 이런 부담이 적어 읽는것 보다는 듣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정치인은 공약의 중요성은 뒷전이다. 정치인은 '프레임'이나 '대중 선동'을 더 선호한다. 이미지를 통한 홍보가 공약 검증보다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권자와 정치인이 모두 원하는 방향이지만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우리는 책임 소재가 분명한 글 보다 책임이 불 분명한 말을 더 선호한다. 그리고, 그 부 정확한 기억에 매달려 현재를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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