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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

(패밀리) 2019. 11. 30. 09:22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병은 치매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내가 세상에 아직 살아있음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사회라는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 여부를 타인에게 인식시키는 행위는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 타인은 나를 적으로 간주한다. 또는 나를 같은 인간이라고 인정해도 자신과 같은 무리속에 포함된 동료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나를 경계한다. 이런 경계심은 나를 위험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한 생존 본능에 해당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드러내서 나의 안전을 확인 한다.

 

  요즘 유행하는 혼밥과 혼술과 같이 혼자 살아도 마찬가지다. 철저히 혼자라 할지라도 사회 구성원으로 속해있는 한 타인에게 내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밥을 시켜 먹고 술을 사는 행위도 타인에게 내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타인이 생산한 제품을 소비하는 행위나 CCTV에 내 모습이 찍히는 것 또한 타인과 연결되는 방법이다. 만일 타인이 배제된 완전한 혼자가 되고 싶다면, 사회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어떤 방법으로든 내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결국 나는 타인에게 기억되거나 기록되기 위해 존재한다.

 

  타인에게 인식되는 것은 반대로 내가 타인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만일 내가 타인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타인이 나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타인이 나를 인식하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다. 예를들어 길을 가다가 먼 발치서 누군가 나를 봤다면 그 사람은 나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나 나를 인식하는 것에 나는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타인이 나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만큼 내가 타인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이 타인을 인식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이 단편적이라면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가족에게 나의 존재와 가족의 존재를 확인하는 수고로 아침을 시작해야한다. 그래서, 나에게 익숙한 타인을 기억하는 것은 서로를 인식하는 절차를 줄여준다. 그래서 인간은 생활을 하는데 있어 기억에 많은 의존을 한다. 타인을 기억하는 것을 정제된 용어로는 추억이라 한다. 

 

 내가 치매를 가장 무어운 병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의 기억에서 타인의 존재가 지워지는 병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속에 들어있는 타인의 존재가 강제 삭제된다는 것은 타인도 나의 존재를 삭제함을 의미한다. 내가 기억하는 타인이 없는데 동일한 타인이 나를 기억하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타인의 존재를 하나씩 지워가는 치매는 결국 나의 존재조차 스스로 지워버린다.

 

  인간은 추억을 사는 동물이다. 추억 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치매는 나의 추억을 먹고 자란다. 내 추억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 치매는 나를 먹는 것과 같다.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를 상실한 나는 살아있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많은 질병은 죽음이라는 의식 속에 나와 관계된 타인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만, 치매는 내가 죽는다는 것조차 모른 체 나의 존재가 사라진다. 죽음조차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치매는 내가 생에 마지막으로 흘릴 눈물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다. 그래서 나는 치매가 가장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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