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작 노트/▷ 문화 예술 과학

안나카레니나-조건없는 사랑

(패밀리) 2022. 4. 17. 06:22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각 다르다.

러시아의 대 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1876년 에 완성한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소설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톨스토이가 지향하는 문학관과 맞닿아 있는 거죠.

행복한 가정이 모두 비슷한 이유는 하나의 조건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행복한 이유가 다양하게 존재한다면 <모두 비슷하게 닮아있다>는 문장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이 비슷하게 닮은 이유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돈과 같은 물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정신적 풍요로움이라고 강조합니다.

 

재화(돈)와 같은 물질은 인간의 감각을 쉽게 자극합니다. 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로 쉽게 교환이 가능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인간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도 하죠. 그래서 돈이 많으면 즐겁고 기쁩니다. 하지만, 즐거움이나 기쁨과 같은 감정은 휘발성이 강해서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즐거움이 행복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더라도 충분조건은 아닌 거죠. 반면 사랑의 감정은 지속성이 강합니다.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인간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사랑이나 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감정의 지속과 감정의 깊이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랑이 우월합니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사랑이 의미하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가끔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죠. 이런 삶은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됩니다. 

사랑이 행복과 연결되는 감정과 더불어 사랑이 감정으로 나타날 때는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은 반드시 기쁨과 연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때로 슬픔이란 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비극적인 사랑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슬픔이 사랑으로 승화되기 때문입니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것은 떠나간 사람을 바라보는 슬픔만큼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또, 우리는 나의 슬픔을 누군가가 감싸 안을 때 사랑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랑은 현실에 나타나는 감정인데 이런 사랑이 지나치면 간혹 집착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에도 깊이가 얕은 단순한 사랑은 반드시 행복함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랑이 부족하면 무관심이 되기도 합니다. 타인의 슬픔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에서 무관심한 사람들은 타인의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사랑의 결과물이지만, 그 속에는 희생이 함께 녹아들어 있습니다. 조건 없는 희생이 사랑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행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조건 없는 희생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돈 앞에 사랑이 무너진다면 지금 느끼는 사랑은 단지 사랑일 뿐이지 행복은 아닙니다. 이것은 좋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기쁨과 같습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행복이 불행이 되듯이 마치 외줄 타기와 같은 얄팍한 행복에 불과합니다.

 

조건 없는 희생으로 나타나는 사랑은 남,녀 사이에서 생겨나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도 마찬가지죠. 때로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관계에서도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이 나타납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작은 지주 계급인 레빈이 농민을 사랑하여 농민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실시하는 것에서 타인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의 숭고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거죠.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톨스토이는 레빈을 통해 농민으로 대표되는 힘없는 일반 대중을 사랑하는 혁명이야 말로 미래를 위한 사랑이자 진정한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빈은 사랑하는 여인 키티가 자신과 약속을 어기고 카레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도 키티를 기다리면서 숭고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에 상처받아 만신창이가 된 키티를 보듬어주는 레닌의 모습에서 헌신적인 사랑이 바탕이 된 가정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런 부분에서 톨스토이가 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실제 주인공은 레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레빈의 삶에 자신을 투영시켜 그려냈습니다.

소설에서는 사랑으로 표현하지만, 그 사랑이란 감정을 잘 못 사용하였을 경우 나타나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은 모든 면에서 왜곡되고 비뚤어지게 그렸습니다. 안나가 사랑하는 아이에 대한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 집착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카레닌에 대한 사랑은 욕구로 비칩니다. 안나의 사랑은 헌신이 아닌 모든 면에서 이기심을 동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랑에 목마른 자신의 욕망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무너졌을 때 동반되는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안나가 느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닌 자기 욕구며 이러한 비뚤어진 욕구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 결과가 자살로 나타나는 것이죠.

또한 안나의 남편이 보여주는 안나에 대한 사랑은 조건 없는 희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자기중심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자신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사랑으로 마치 책임감 있는 남자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자신을 위한 조건부 사랑에 불과합니다. 

모든 가정은 저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을 꾸려 가지만, 실상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랑으로 포장된 자기만족적인 조건부 사랑에 불과한 것으로 이런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조건을 만족시키려다 보면 종래에는 비극적 결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숭고한 희생으로 추앙 받습니다. 도프도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를 따라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죄수를 상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소피아는 성녀로 추앙을 받고 독일 대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파우스트를 사랑하여 자신의 아이까지 살해할 정도로 끝없이 타락하는 그레트 헨은 그녀의 타락이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점에서 소설 말미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특히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는 그의 작품 <레미제라블>과 <가난한 사람들>, <노트르담의 꼽추>를 통해서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의 숭고함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쫏기는 죄수를 위해 사랑을 베픈 신부, 코제트를 위해 자신을 헌신한 <레미제라블>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