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전국에서 들끓은 ‘노란 시위대’의 분에 대응하는 정부의 진압방식이 그렇게 이례적인 건 아니었다. 약 3,000명이 체포된 2005년 파리 교외의 소요사태, 1968년 봄의 대규모 시위 등 정부가 강경 진압을 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강도가 한층 높았다. 2019년 2월 12일 국회에서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노란 조끼 시위대①의 집회가 시작된 이래 총 1,796명이 법원 판결을 언도받았으며, 판결 대기 중인 사람의 수도 총 1,422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를 쓰고 처벌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그리 놀랍지는 않다. 정부가 바로잡으려는 ‘공화국의 질서’라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하면 허상에 불과하다. 오늘날 프랑스의 제도적 장치들은 공화정의 법치 전통에 따른 산물이다. 그러나 공화주의 법치 전통은 그와 상반되는 억압적인 권위주의와 충돌해 생겨난 결과물에 가깝다. 프랑스 대혁명 초창기의 입법의회 의원들은 앙시앵레짐(구체제 왕정)②의 진압 방식과 상 반되는 방식을 구축했으며, 이는 삼부회 진정서에서 가장 자주 제기되던 불만들, 즉 불평등하고 자의적이며 과도한 진압방식의 병폐를 없애려던 것이었다.
따라서 1789년에 선포된 공화주의 형법에서는 자유를 제1원칙으로 하는 기본적 욕구를 구체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를 위해 입법의회에서는 ‘안전(Sûreté)’이라는 개념을 구상해냈는데, 그 요지는 정부 당국이나 유력자의 모든 권력남용으로부터 시민의 권리 일체를 법적 보호하에 두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정부외 권력자의 권력 남용까지 제한했다는 점에서 혁명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오로지 법만이 개인의 자유 행사권을 제한할 수 있으며, 아울러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에도 법이 나서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과 (프랑스 최초의 근대 법전이었던) 1791년 형법에서 다양한 원칙으로 변형돼 나타났다. 그에 따라 “범죄 를 저지르기 전에 제정·공포된 법에 의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처벌 받을 수 없다”는 인권선언 8조③ 적법성의 원칙에 두 가지 원칙이 더 더해졌다. 그것은 행위에 상응하는 수준의 진압을 요구하는 비례성의 원칙을 내포한 불가피성의 원칙과, 판사에 의한 통제 원칙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앙시앵레짐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질서를 여는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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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의 원칙에 따른 자유주의 형법의 전통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파시즘 정부의 만행과, 특히 나치 정권하에서 지속된 대량학살에 반대하며 태동한 유럽 인본주의 운동에서도 중요한 입지를 차지했다. 대량학살 같은 만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1940년 11월 4일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를 위한 협약’ 제5조에서는 ‘자유와 안전에 관한 권리’가 엄숙히 천명됐다. 1945 년 2월 2일에는 청소년 범죄 관련 명령이 채택됨에 따라, 미성년자의 형사 재판에서 범죄자의 계도가 우선시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
20세기 후반에도 프랑스와 유럽에서는 공화주의 모델의 적용이 가속화된다. 그에 따라 변호권이 신장됐으며, 1975년에는 구금 대체 형벌이 확립됨으로써 처벌도 완화됐다. 아울러 ‘소소한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자제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확산됐다. 이같은 진보적 변화의 양상을 보면, 형법 자유주의가 제대로 확립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권위주의 전통은 늘 우리의 사법 질서에 영향을 끼치려 노력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 1970년 6월 8일에 공포된 법에서는 ‘전문 폭력 시위대’의 근절을 추구할 만큼 권위적인 양상이 두드러졌다.
게다가 불법 집회에서 저지른 파괴 및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주동자뿐 아니라 단순 참여자에게까지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고 있다. 특히 노조 책임자를 신속히 체포함으로써 “지극히 평화 로운, 나아가 평화주의적인 집회 주최자까지 처 벌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1981년 1월 2일 채택된 ‘치안 및 자유’에 대한 법에서도 권위주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법은 사법경찰의 권한을 확대하고, 즉각 출두명령의 전신인 현행범 체포 절차를 보편화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부 경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법은 집행 당시에 특히 많은 지탄을 받았고, 좌파 정권 집권 후 1983년 6월 10일 법에 의해 곧 폐지됐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는 치안 담론이 크게 대두됐고, 권위주의 전통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는 대대적인 경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활발히 전개된데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치안권’을 남용하며 ‘피해자’의 입장만을 강조하고,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권위주의 논리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전례없는 입법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공권력의 행사를 제약하는 요소’ 를 없애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이는 공권력을 방해하는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권리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지난 20여 년간 경찰과 검찰에게 주어진 특권뿐만 아니라 행정당국의 진압권, 특히 시장과 경찰청장의 권한은 계속 강화됐다. 이런 치안 논리는 불가피하게 상위의 사법적 보호 조치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즉 헌법적 가치, 혹은 유럽 연합에서 내세우는 사법 정의와 일맥 상통하는 형법 자유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 이다. 입법 주체가 피의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구금 범위를 확대하려는 경향은 2010년 6월 30일 헌법 위원회에 의해 저지됐다. 2008년과 2009년 유럽연합 인권 법원에서 다수의 법령이 발포된 뒤 취해진 조치였다. 법령에 따르면 구금 상태에 처한 모든 사람은 심문 중 변호사를 대동 할 권리가 있다.
오늘날 정부의 진압 방식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바로 이런 특수한 맥락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노란조끼’ 집회의 폭력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도 권위주의 전통이 두드러지는데, 권위주의적 성격은 ‘예방차원’을 앞세운 불심검문 과 즉각 출두 명령의 남발 등 과잉진압 조치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자유를 제한하는 이런 조치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는 안전한 수사를 보장하거나 판사에게 무사히 피의자를 인도하기 위한 경우에 한해서만 정당화된다.
그럼에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정부 입장에서 보다 쉽게 질서유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정부는 복면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소할 방침이다. ‘집회 시 공공질서를 확보 및 강화하기 위한’ 법안(2019년 2월 5일 국회 수정안) 제4조의 내용에 의하면, “공공대로에서 열리는 집회 인근에서 공공질서를 흐렸거나, 혹은 그럴 위험이 있는 집회가 끝났을 때”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은 공공질서에 지장을 준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 이 모호한 문구를 보건대, 이는 형법의 적법성과 불가피성 원칙을 무시한 처사다. 게다가 설령 그 합헌성 검토가 끝나더라도 차후에 경찰이 더 많은 사람을 검문할 권한을 줄 수 있다.
[노란조끼 시위는 '겅력한 공권력의 행사가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경찰의 과도한 조치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공권력의 남용 행태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에서는 한동안 부인해왔으나 경찰에 의한 폭력 사태가 적지 않았다. 내무부에서는 경찰에 대한 조사와 관련해 진행 중인 기소 건수가 133건임을 공식 발표했다(크리스토프 카스타네, France Inter, 2019년 2월 10일). 공공질서 측면에서 프랑스의 상황이 특수하다면, 프랑스 시위대가 유난히 폭력적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독일의 신나치주의자나 영국의 훌리건들과 비교하면, 프랑스의 시위대는 양호한 편에 속한다. 따라서 문제는 단계적 진압 방식보다 어떻게든 공공 장소를 장악하겠다는 경찰의 권위주의적인 사고에 있다.
권위주의 전통은 공권력이 판사의 통제권, 특히 형사 재판관의 통제권을 최대한 제한하려는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형사사건에 판사가 개입 할 경우, 대개 절차가 느려지고 진압 당국의 활동이 마비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 ‘판사 따돌리기’ 행태는 ‘준 형사진압’, 즉 ‘강제조치’의 확대로 나타난다. 행정당국이 사법당국의 통제 권한 밖에서, 정부에 부여된 기존의 권한을 훨씬 넘어서서 각종 위반 사례에 대해 경고 및 제재를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형사소송권 및 그에 보장된 권리를 가로 채는, 이런 정부의 진압 형태는 지난 10년간 눈에 띄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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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형사처벌의 맥락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들을 시행할 때에는 범법행위의 증거가 제시돼야 함에도 지금의 정부는 위협적이라고 판단되는 누군가의 ‘행동’ 하나만으로도 시위나 집회 참여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릴 수 있다. 폭력사태나 시설물 파괴 행위를 일으킨 당사자가 아님에도, 그런 집회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모호한 규정 때문에 정부진압의 범위는 비단 집회에 끼어든 전문 폭력단이 아닌 일반인으로까지 대폭 확대될 수 있다.
게다가 집회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6개월의 징역에 처할 수 있으며, 이런 조치가 악용될 위험도 있다. 2015년 11월과 2017년 10월 사이 테러척결을 위한 긴급사태 발효 시 집행된 거주지 지정 명령 및 가택수색 명령은 얼마 후 “과격한 반체제 운동권”에 속해있다던 생태운동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됐기 때문이다.[르몽드지 스크랩: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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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노란 조끼 시위대: 노란조끼 시위는 2018년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발표에 반대하면서 시작되어서 점차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시위를 말한다. 당시 프랑스는 주택보조금 감면과 같은 서민의 세금을 인상하고 부유세 철폐나 기업 세액공제를 통해 부유층의 부를 늘여주 정책을 시행했다.노랑조끼는 운전자가 사고에 대비해 자동차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노랑조끼를 입고 시위에 나섬으로써 이름 붙여졌는데 특이할 만한 사실은 노랑조끼는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이나 '프랑스 민주노동동맹(CFDT)'와 같은 거대 노동조합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따라 촉발된 시위였다.
①앙시앵레짐(구체제 왕정): 앙시앵레짐은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 지도자들에의해서 '구체제'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중세 봉건 및 왕정체제를 뜻하는 말로 마땅히 사라져야 할 모순투성이의 정치 사회적 제도로써 이는 혁명으로 태어날 새로운 이상적인 체제와 대척점이 있다. 이를 한자 언어로는 '수구(守舊)'라고 한다. 앙시앵레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마련하도록 한다.
②인권선언 8조: '법은 엄밀하고 명백한 형벌만 규정해야 한다. 오직 죄를 짓기 이전에 제정하고 반포하고 합법적으로 적용한 법으로써만 벌할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인권선언 8조에 따르면 명백히 죄가 나타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벌할 수 없다고 명시된다. 이는 '법치주의'는 특권계층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는 법으로써 일반 시민계급은 이런 '법치주의'보다는 '행정적 편의주의'에 따라 많은 불합리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기에 '시민 자유주의'와 더불어 '법 평등주의'에 따라 '명백하지 않는 죄'는 처벌할 수 없으며 '명백한 죄'역시 오로지 법으로만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행정권이 결코 법위에 있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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