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 자유-자연계의 자유(2)
스피노자는 "한 사물이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존재하고 움직일 때 그 사물은 자유롭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사물에 존재하는 고유한 성질을 본성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고유한 성질을 유지하고 그것에 맞게 존재할(움직일) 때 그 사물은 자유롭다고 생각한 거죠. 우리는 자연계에서 자유를 생각하면 어디든지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떠올리지만 그런 움직임이 사물의 본성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나무는 땅속에 뿌리를 내립니다. 씨앗이 뿌려진 위치에서 싹이 트고 광합성을 하는 등. 나무가 그 자리에서 자라면서 고유한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나무는 그 자체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이 스피노자가 말한 자유입니다. 즉. 사물의 본질을 유지할 때 그 사물은 자연에서 자유로운 존재라는 거죠. 위에 언급했듯이 씨가 뿌려져 한 그루의 나무로 자랐다면 그 나무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칡덩굴이 나무를 덮어버리면 나무는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죠. 결국 나무는 말라죽을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이 나무는 본질을 잃은 것이고, 자유를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본질을 추구하는 것에는 "~다움"이 있습니다. 흔히 '~답다'라는 말이 바로 모든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어른답다. 아버지답다. 선생님답다. 모두 본질을 추구할 때 '~답다'라는 말을 붙여줍니다. 아이를 예로 들면, 아이는 아이 다울 때 아이의 본질이 잘 유지되죠. 간혹 어른의 행동을 흉내 내는 아이를 볼 때 어른들은 매우 좋아합니다. 아이가 나이보다 성숙한 행동이나 말을 할 때 칭찬을 많이 하죠. 하지만, 그것은 아이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른은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를 바라보기에 아이가 아이 다운 행동을 하면 골치 아프거나 싫어하죠. 그래서 어른은 잔소리를 하거나 아이를 억압해서 어른의 시센에 아이를 길들이려고 합니다. 아이의 본질적 자유가 억압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억압적 상황이 깊어지면 아이는 올바른 성인으로 자라기 어렵습니다. 요즘 많이 나타나는 분노조절 장애, 조현병, 데이트 폭력 같은 것이 모두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운 아이의 본질을 잃고 비뚤어진 자아가 형성된 게 그 원인입니다.
교육적으로 아이를 엄마와 아빠의 기준에 가두려고 한다면 그 아이는 '아이다움'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결국 본질을 잃은 아이는 그 자체로 '자유'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보호자는 아이의 자유를 마음대로 제한할 마땅한 권리가 주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겠습니다. '아이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 가능하며, 아이의 구속 또한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리고 '언제까지 가능한가?' 어려운 문제죠. 자유에 관한 철학적 접근으로 답을 말하면 '부모는 단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행동과 생각의 자유를 통제할 어떤 권리도 주어져 있지 않다'입니다. 그렇다면 그냥 방치해야 하나? 그 또한 부모로서의 마땅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부모다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 모호한 경계에서 중심을 잘 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연적인 조건에서의 무한한 자유는 아이의 다움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모든 자유로움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사회적 자유를 논의할 때 아이의 자유를 어떻게 조절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입니다. 어른도 어른다움을 유지할 때가 가장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어른은 나이만 먹은, 생물학적 성인만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생물학적 성인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더해서 정신적 성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어른다운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는 올바른 어른을 만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러한 '~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선배와 후배, 직급 간에 '~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책임과 권한이라는 두 가지를 잘 조율한다면 회사에서도 '~다움'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에서 누리는 자유가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라고 한다면, 인간은 자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지구 탄생 이래로 존재하는 세상 만물은 모두 자연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연계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동물, 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 자연이 정한 규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사계절이 나타나는 현상. 밤과 낮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은 모두 자연계가 만든 규칙입니다. 과학적 시선으로 보면 우주의 모든 원리가 자연계라 할 수 있죠. 그 속에 포함된 지구가 자전이나 공전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자연계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그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은 '운명론(숙명론)'이나 '예정론'과 연결되어있습니다. '운명론'이나 '예정론'은 자연법칙은 인간이 가진 의지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 법칙을 마치 운명(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이러한 법칙은 반드시 어떠한 원인 뒤에 뒤따라온다는 점에서 예정된 법칙. 즉 예정론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혹은 사라지는 자연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기에 '운명론'이라 하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듯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것을 충분히 예지할 수 있기에 '예정론'이라고도 합니다. 원인이 있으면 마땅히 결과가 있는데 원인과 태도에 따라서 이어지는 결과가 이미 결정된 상태이기에 미래를 미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인간은 자연계의 질서를 거스를 수도 없으며, 자연법칙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는데, 자유론적 관점에서 볼 때는 지극히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랜 과거에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정해진 자연법칙에 신을 등장시켰습니다. 이른바 신격화죠. 인간은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이런 현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이집트나 일본, 우리나라 등 여러 나라의 샤머니즘과 같은 종교가 바로 이런 이유에 해당합니다.
자연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주류 중 하나를 형성했던 스토아학파가 주장한 자유주의적 이념이 있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이성적 덕만을 선하고 추구할만한 것이며 자연에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즉. 부와 건강과 명예와 같은 모든 문화나 사회적 규약에 의존하는 도덕적 가치를 거부했던 거죠. 이는 집단적 사회가치에 의해서 정립된 도덕적 기준을 거부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 지배계층에 의해서 완성된 가치를 부정한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지만, 그들은 일상적인 편견과 관습에 개의치 않고, 삶의 궁극적 목표를 모든 필요와 외적 가치로부터의 자유, 즉 자족성에 뒀습니다. 이는 자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연 주의적 윤리학 속에서 도덕적 삶의 확고한 토대를 발견했고, 아무 정념과 충족에서 발전하는 자유를 이상적 삶의 시금석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스토아학파가 자연에 예속된 삶을 추구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사회적 자유는 결국 자연적 예속을 뜻하는 바이기에 자연으로부터의 자유도 동시에 추구를 해야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스토아학파는 자연의 일부로서 운명과 필연에 종속되면서도 자연과의 자발적 일치를 실천적으로 추구,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즉.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자립성. 자족성. 자율성을 단적으로 자유의 가능성에 관한 합리적인 대안을 절실하게 모색했던 거죠.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못한가?'를 생각해 본다면, 자연계의 질서는 그 자체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 능력으로 자연계에 나타난 모든 현상을 파악할 수 없기에 인간은 '신'을 소환하여 자연계의 질서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누가 자연을 만들었는가?'라는 창조론과 '자연은 스스로 나타난 것이다.'라는 진화론의 관점을 모두 수용한 상태에서 '자연계의 질서'그 자체가 과연 자유로운 상태인가를 고민할 필요도 있습니다. 만일 자연의 법칙이 그 자체로 자유롭다면 자연계에 속한 모든 존재는 자유로울 것이고 자연계의 법칙에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물질 역시 속박된 상태라고 할 수 있기에 자연계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상태인가를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계속>
[연재-1] 자유-자연계의 자유(1) : http://blog.daum.net/pongsfamily/1176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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