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부터 박근혜의 탄핵에 이르기 까지 박근혜 정부의 민낯을 들여다보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해서 얻은 귀중한 선물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여러 사태를 보면서 떠 오르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았습니다.
고민한 결과물을 간단하게나마 공유하고자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 하는 바가 다르고 느끼는 크기가 다르니 나와 생각이 다르다하여 심한 비난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견은 소중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스스로에게 한 질문은 크게 세가지 입니다.
1. 선[善]은 무엇이고 악[惡]은 무엇인가? 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2. 이 사회에서 도덕성과 윤리가 무너진 원인은 무엇이고 이를 지켜내기 위한한 방법은 어디있는가?
3. 성공과 행복의 올바른 가치는 무엇이며 행복한 삶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입니다.
1. 선[善]은 무엇이고 악[惡]은 무엇인가? 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절대 선]과 [절대 악]에 대한 질문입니다.
[선]이 존재 한다면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선]이었을 까요? 혹은 [악]이었을 까요?
신생아가 배고파서 우는 울음으로 인해 주변이 시끄럽다면 그 아이의 울음은 [악] 일까요?
갓난 아이가 오줌을 싸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다면 그 행동은 [선] 일까요? [악] 일까요?
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존에 필요한 행동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만일 생존에 필요한 행동이나 의식이 [선]과 [악]으로 구분 되어진다면, 사슴을 먹는 호랑이는 절대 [악]의 존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사슴이 절대 [선]의 존재는 아닙니다. 풀을 뜯어 먹는 사슴도 풀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 [악]의 존재 일 수 있습니다. 결국 태어나면서 정해진 모든 행동이나 의식은 [악]이 아니므로 [선]에 가깝다 하겠지만 그렇다고 절대 [선]이라고 단정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의미 없다는게 제 생각 입니다.
이는 인간의 기준에서 바라본 [선],[악]의 조건 입니다. 그렇다면 신[神]의 입장에서 절대 [선]과 절대 [악]을 구분 지을 수 있을 까요? [선]과 [악]을 대표하는 존재가 바로 [천사]와 [악마]입니다. 모든것을 창조한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악마는 절대 [악] 일까요? 만일 악마라는 존재가 절대 [악] 이라면 그 악마를 창조한 신도 악[惡]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악마의 행위는 악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결코 [악]이 아닙니다. [악마]는 자신이 만들어진 대로 행동 할 뿐입니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 졌기에 본능에 따른 행동을 [악]으로 규정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천사의 행동이 악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선]이 아닌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조건에서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선]과 [악]을 나누는 것 조차 신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한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인간이 신의 입장을 온전히 대변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신의 아들이 아닌데 어찌 신의 입장에서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이 결코 존재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입장을 빌려 이야기 하는 논리도 모순된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때문에 [선]해지고 [악]해 질까요?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출발 합니다. 인간이 만든 법 질서. 인간이 만든 윤리의식. 인간이 만든 모든 규범에서 [선]과 [악]은 규정되고 판단 되어집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는 선[善]일까요? 악[惡]일까요?
물론 [선] 이겠죠.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축국 일본의 초대 총리이자 조선자치통감을 지낸 중대 전범이니 이를 암살한 안중근은 당연히 선[善]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국의 중요 정치인을 암살한 악[惡] 일수도 있겠지요. [일본인의 입장 이야기는 다시 거론 하겠습니다.] 일본인의 입장이 불편하다면 순수 자연인으로써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은 악[惡]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안중근의 행위를 선[善]으로 단정 지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토 히로부미가 가진 [계급]혹은 [직위]때문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가진 전범 국가의 [수상]이라는 직위가 그를 암살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예를들어 당시 일본의 수상이 이토 히로부미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이유가 사라집니다. 즉. 그 누가 되었던간 에 안중근은 일본의 수상을 암살 한 것이지 자연인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 한 것이 아닌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이 선[善]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보편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안중근의 암살 행위가 누가 보더라도 정당한 독립운동-군사적 행동-의 하나였는가? 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행위가 국가 독립을 위한 신념에 찬 행동이었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있습니다. 만일 그의 행동이 신념이 결여된 단순 살인 행위였다면 어쩌면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념에 기반한 행동에 따른 결과가 수 많은 민간인의 의미없는 희생이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일 이 조차 [선]의 범위에 해당 된다면 이슬람 급진 세력인 IS의 행위도 [선]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해 당사자가 아닌 누가 보더라도 올바른 행동이었냐? 가 [선]과 [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위에서 보듯이 [선]과 [악]의 가치 기준은 절대적인 인간의 기준이며 이런 기준은 보편성과 타당성을 가져야 합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자면 이슬람 율범에 의해 저질러진 명예살인 같은 행위는 우리의 관점에서는 [악] 이지만 그들의 관점에서는 [선] 일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보는 관점과 사회 정의에 따라 [선]과 [악]의 기준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가치기준에 맞는 [선]이나 [악]의 행위는 당연히 인간이 태어난 이후에 형성 됩니다. 즉. 타고난 선청성이 아닌 후천성에 의해 [선]과 [악]의 행위가 만들어 집니다. 이는 [교육]에 의해 인간은 얼마든지 악행을 할 수 있고 얼마든지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는 "그 아이가 원래 그래" 라는 말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말 입니다. 악행을 한 사람에 영향을 미친 모든 것은 이런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쩌면 가정의 교육 뿐만 아니라 사회 교육-공교육-을 담당하는 국가도 이런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2. 이 사회에서 도덕성과 윤리가 무너진 원인은 무엇이고 이를 지켜내기 위한한 방법은 무엇인가?
우병우 민정수석. 김기춘 비서실장등 이제는 모두가 다 아는 이름이 된 사람입니다. 이 들의 공통점은 도덕성이 타락할 대로 타락 했다는 점과 매우 뛰어난 두뇌와 실력의 소유자라는 점 입니다. 일반인이 범접 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머리를 소유 했으며 법적 지식또한 탁월한 사람들이 어찌 저렇게 타락 할 수 있을까? 과연 도덕성은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때 바른생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배웠던 [도덕]과목과 [윤리]과목의 높은 지식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법조인으로써 어떤 행동 기준이 [법]정의와 사회 가치에 올바른 행동인자 과연 몰랐을까요?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욕심에 사로잡혀 한치 앞을 볼 줄 몰랐다는 말로 마무리 하기에는 너무 많은 공직자가 타락해 있었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습득하는데 두 가지 방법을사용 합니다. 첫 번째는 지식으로 접근입니다. 학생들이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 하듯이. 인터넷 지식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듯이 인간은 문자, 언어, 영상을 통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얻어진 습득물은 온전히 머리에 저장되어 평생을 살아가며 활용 되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체득하는 법 입니다. 실체적인 정보 이외의 것들은 모두 체득으로 이루어 집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구나.'와 같은 대인관계나 사회 질서에 대한 문제들은 모두 체득으로 이루어 집니다. 웃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 사람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글로써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규범 뿐만 아니라 칼에 살이 베이면 아프다는 생체적 정보까지 모두 체득하여 습득 되는 것 입니다. 이렇게 얻어진 것은 모두 머리 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저장 됩니다 그렇기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도 의미로써 통용이 됩니다. [칼에 베에 본 경험이 없는 아이에게 칼에 베인 상처를 설명 해도 알아 듣지 못하거나 귤을 먹어보지 못한 아이에게 귤의 새콤한 맛을 설명 해도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입니다.]
도덕이나 윤리관이 바로 두 번째에 해당 합니다. 도덕과 윤리는 지식과 정보로만 접근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학생때 내신 성적을 위해서. 혹은 대학 시험에 필요해서 정보로만 습득 되어진 [도덕]과 [윤리]는 머리 속에만 저장 됩니다. 당연히 세월이 흐르거나 해당 정보가 필요 없어 지면 [도덕]이나 [윤리]에 대한 개념은 사라집니다. 이렇게 정보로만 습득 되어진 [도덕]과 [윤리]는 각 개인의 [도덕성]이나 [윤리관]을 형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도덕적 신념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도덕관이나 윤리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야 할 까요?
바로 교육 입니다. 가정교육이 필요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이 소 가족이 된 사회. 학교 공교육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더 더욱 가정교육의 필요성이 절실 하다 하겠습니다. 부모에게서 올바른 가치관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만의 올바른 신념을 만들고 이런 신념이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3. 행복은 무엇이며 행복한 삶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입니다.
헬 조선이라는 말. 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이 존재하는 현 사회에서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금전이나 성공이 반드시 행복의 필요 조건일까? 물론 돈, 직위, 명예가 행복의 조전 중 하나 일수는 있지만 반드시 있어야 할 필요 조전은 아닙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에 여념없는 추등학교 아이를 볼 때면 가슴 한켠이 '짠'해 집니다. 과연 우리 아이는 행복한 아이인가? 아이에게 질문 했을 때 아이는 '행복해요'라는 답을 합니다. 엄마, 아빠의 눈치가 아닌 순수한 자기 생각으로 행복 하다 말 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떠 했는가? 물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이유가 지금 딸 아이보다 많이 놀아서인가? 아니면 지금 딸아이 보다 공부를 더 적게 해서인가? 어쩌면 핸드폰도 없었고, TV조차 없었던 그 시절이 어떻게 더 행복하게 보이는가? 물질의 기준으로 접근 하면 매우 불행 했어야 할 나의 어린 시절은 어찌그리 행복했던가?
지금 딸 아이가 행복하다 말 한 기준은 어디인가? 이것이 물질로만 설명 되어 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답은 [관계]에 있습니다.
추울 겨울 따듯한 아랫목에 옹기 종기모여 가족끼리 오손도손 귤 한 봉지 까먹으며 저녁을 보내는 가족은 한없이 불행하고,
추운 겨울 따듯한 외국에서 지내는 가족은 한없이 행복한가?
만일 출국장에서 부터 싸우기 시작해서 입국할 때 까지 싸웠다면 과연 그 가족의 겨울은 [행복]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아빠, 엄마가 아무리 돈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것 먹고 싶은것 다 해 줘도 밤마다 맞고 산다면 과연 그 어린 시절은 행복 하다 말 할수 있을까?
없이 살아도, 부족해도, 살갑게 살고 서로를 위한다면 어쩌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생활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던 이유는 바로 같이 놀아줄 친구가 있어서 였고, 같이 저녁을 먹는 식구가 있어서 였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내가 행복해 지고 우리 가족이 행복해 지고 나와 연관된 모든 이가 행복하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잘 사는 형님네 가족과 못 사는 아우네 가족이 즐겁게 저녁 한 끼 먹으며 형제의 우애를 잘 지킬 수 있는 것도 모두 [관계]에서 나온다 하겠습니다. [관계]는 내가 설정하기 나름이고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니 결국 이 모든 행복도 내 하기 나름이라 하겠습니다. 행복을 만드는 조건. 행복을 지키는 조건은 모두 나에게서 나온다 할 수 있겠지요.
얼마전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 입니다
외국 유명 작가에게 당신의 아이가 한국에서 산다면? 이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작가의 답이 의외였습니다.
"우리 아이가 한국에서 산다면 지금보다 공부를 조금 더 해야 할 것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할 것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노력해야 겠지만 나의 아이는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였습니다.
마지막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지경이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려서 부터 많은 경쟁을 했습니다. 서로 돕고, 배려하기 보다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았습니다. 옆집 아이보다 내가 더 성적이 좋아야 했습니다. 옆집 아저씨 보다 내가 더 많은 월급을 타야만 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더 뛰어나도록 끊임없이 비교되어 왔습니다. 1970년대 부터 시작된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과정은 생략한 체 오로지 결과만 강조하는 사회로 만들었습니다. 끊임없는 비교와 끊임없는 채찍질 속에서 우리는 결국 '잘 살게'되었지만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교는 인성을 가르치는 곳에서 입시를 위한 도구로 전락 되었고, 가정은 교육의 출발에서 그냥 먹고 자는 하숙집으로 잔락 해 버렸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사회는 병들었고 우리도 모르게 사람과의 단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혼밥이 유행하고 혼 술로 스스로 위로 합니다. 내 곁을 지켜주는 것은 사람이 아닌 핸드폰입니다. 관계가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선이 실종되었습니다. 돈만 많이 벌면 어떤 어려움도 거뜬히 이겨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질에 지배받는 세상은 결국 [헬 조선]이 되었고 [금 수저]를 달고 태어나지 못한 대부분의 젊은 이는 고통 받고있습니다.
위에서 언급 했듯이 대한민국은 지금에라도 사회적인 인간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인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는 돈이 최고라는 사회 풍조를 만들려합니다. 아이를 잃은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도 오로지 돈으로 환산하여 위로 하려 합니다. 경제 규모를 제외한 국가 행복지수를 들여다 보면 대한민국 보다 못 살아도 행복한 나라가 얼마든지 많습니다. 세계 경제10위권인 대한민국이 헬 조선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 정의]가 뿌리 내려지고 [도덕적 신념]이 박수를 받으며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올바른 인성교육과 가정교육이 필요 합니다.
이런 교육은 올바른 투표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가 자라 넓은 시야로 깊게 생각 할 힘을 기르면 그때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웃음으로 모든 슬픔이 치유되며 진정 행복한 국가가 탄생하길 기원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정말 좋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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