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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 성서 속 인문학: 이름과 본질(1)

(패밀리) 2019. 7. 20. 11:05

 

[연재-1] 성서 속 인문학: 이름과 본질(1)

 

 

   세계에서 가장 많이 출간되는 성서는 종교 서적으로 분류되지만 인문학적으로도 우수한 책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데 있어 빼놓지 않고 봐야 할 필독서 중 하나인 성서는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인문학의 시선을 통해서 성서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연재의 첫 번째는 창세기 2장의 내용 중에서 아담이 세상 모든 만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 내용은 깊이가 깊어 부담이 적은 2장부터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장 부분 발췌-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 2:19)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2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2)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3)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창세기 2장 19절에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와 20절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마지막으로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라는 구절을 보면 어떠한 대상을 부르기 위해서 '이름'을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름을 만든다는 것은 어떠한 물체나 현상을 '무엇' '무엇'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그 대상과 현상의 본질을 고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높은 차원의 의식 행위입니다. 이는 지식의 정도가 높은 단계를 넘어 지식을 활용하고 인식하는 것에 대해서 분석과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서 대상의 본질을 깊이 있게 고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른바 지식에 지혜가 더해져 인식적으로 높은 완성을 이루는 수준입니다.

 

   스스로 학습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습니다. 단지 수준에 따른 차이가 있을뿐, 능력 그 자체는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다르게 지식적인 능력을 매우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판단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 상태에 있는 생명체가 갖는 이기적 행위에 이타적 감정을 더해져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①

 

   창세기 1장 22절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에서 그들(모든 생명체)에게 '복'을 주었다는 것은 개별 생명체에게 맞는 능력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받은 생명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한 모든 생명체에게 그에 맞는 서로 다른 능력을 부여해서 모든 생명체가 이 세상에서 번성하도록 창조했습니다. 번성했다는 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창조한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이 부여한 질서(자연의 법칙)에 알맞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생명체가 가진 능력이 자연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면서 번성하는 것은 그만큼 알맞은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특정한 생명체가 과도한 능력을 갖게 되면 그 개체로 인해 자연계에 순환하는 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생명체가 번성할 수 없게 되기에 ② 각각의 생명체에게는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알맞은 만큼의 능력만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생물학적인 평형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창조론적 시선으로 볼 때 진화론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이론입니다. 즉. 창조론에서 말하는 생명 창조와 더불어 능력을 부여한 것은 다음에 나타나는 진화론 단계에서도 모든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을 정도로 균형 잡힌 세상이 유지될 수 있도록 그만큼만 진화하는 것조차 어쩌면 창조론 속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③ (기독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다고 한다면 '진화론'도 창조론의 뜻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에서 하나님은 창세기 다섯째 날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였으며 그 생명체마다 스스로 번성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할 정도로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질서를 유지하면서 잘 사는데 왜 이를 다스려야 할 또 다른 생명체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다스림은 정해진 어떠한 규칙이나 질서를 벗어났을 때 그것을 올바르게 바로잡는 행위로 이런 행위는 다른 생명체를 다스리기도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즉. 내가 다른 누군가를 다스릴 수 있으려면 스스로를 먼저 다스릴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능력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며 능력을 초월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지식을 넘은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이러한 초월적 능력은 스스로 발전시킬 수도 있고, 누군가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부여된 능력은 계급론적인 접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계급은 일반 시민이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부여되는 것으로 그 자체로도 능력을 뛰어넘는 타인을 다스리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세기 1:26)' 이러한 계급적 권위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러한 계급적 권위에 맞게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힘(지혜)을 같이 부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였으니(창 1:28)' 이 '복'이라 함은 이전에 창조한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복'(능력)과 다른 형태의 '복'(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생명체가 세상에서 번성할 수 있도록 주어진 '복(능력)에 더해서 다른 '복'이 바로 지식의 발전과 지식을 활용한 지혜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생명체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권위의 상징이면서 그 능력을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스로 능력을 발전시키는 힘조차 하나님이 부여했는데 그것은 창세기 2장 7절 '...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 생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이 부여받은 능력이 최초로 발현되는 사건이 이름을 짓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한 능력. 세상에서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 이러한 능력에 세상 물질을 높은 차원에서 고찰하는 행위. 즉 물질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는 행위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 2: 19~20)'입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행위로써 의미의 첫 번째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있어야 가능한 행위이고 두 번째로는 소통(대화)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행위입니다. 이름을 짓는 행위가 어떤 깊이 있는 의미를 갖는지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 <주> ------------------------------------------------------------

① 이기적 행위에 이타적 감정을 더해져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행위를 합니다. 이는 자연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필수적인 유전자인데 이런 이기적인 행동은 무한한 이기심이 아닌 규율기나 규칙을 따르는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이 역시 생존에 필요한 것입니다. 단지 인간만이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이타적인 행동을 합니다. 스스로 손해 보는 이타적 행동을 맹자는 측은지심으로 표현했으며, 루소는 연민의 정으로 표현했습니다. 기독교적 사상에서도 이런 이차적인 행동을 '사랑'으로 이야기합니다.

 

② 특정한 생명체가 과도한 능력을 갖게 되면 그 개체로 인해 자연계에 순환하는 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생명체가 번성할 수 없게 되기에: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부여받은 능력이 과도한 능력인가? 아니면 인간 스스로 그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서 과도하게 표현이 되는가?에 대한 논란입니다. 근세기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인간이 활용하는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여 자연계의 생태계가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바로 과도한 능력에 따른 자연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으로 이 과도한 능력까지 하나님이 부여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부여한 능력을 인간 스스로가 올바르게 절제하지 못했는가?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은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③ 진화하는 것조차 어쩌면 창조론 속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에 진화론과 창조론은 서로 반대되는 이론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창조론이 종교적 틀안 갇혀 발전 없이 굳어져 갈 때 진화론은 과학적 성취물을 내세워 계속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어쩌면 창조론 속에 진화론을 포함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창세기에 담긴 폭넓은 의미를 종교계에서 유연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